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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종주하며 둘러본 영남알프스

중앙일보 2010.10.22 00:29 Week& 2면 지면보기
해발 1000m가 넘는 일곱 개의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영남알프스 산군 종주. 산 아래에서 능선까지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을 합치면 약 45㎞에 달한다. 이틀에 걷기에는 고된 길이다.


억새에 마음 흔들리면 한 달 안에 오시라

그래서 영남알프스 종주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산꾼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근래 등산 인구가 급증하면서 영남알프스 1박2일 종주를 시도하는 일반인도 많다.



특히 억새가 만발한 늦가을에 발길이 잦다. 강원도 지역엔 첫눈이 오는 11월 말까지도 이곳을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굳이 종주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기자가 종주를 한 것은 ‘영남알프스 억새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영남알프스 억새 군락은 변했다. ‘100만 평 억새’라는 사자평은 고산습지로 변했고, 간월재와 신불재가 그 명성을 대신하고 있다.



재약산 아래 배내골에서 24년간 산장을 해온 산꾼 김성달(55)씨의 도움을 얻어 영남알프스 억새 지도를 그리며 걸었다. 한나절 산행이면 억새 군락을 만날 수 있는 산행 코스가 즐비하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해발 900m 간월재에서 바라본 해돋이.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 잦아든 바람 속에 억새 또한 숨죽이고 있다. 간월재는 임도를 이용해 차로 접근할 수 있다.







억새 산행의 들머리, 운문산









영축산 아래서 본 억새 평원. 신불재 너머 신불산까지, ‘억새 능선’ 이 길게 뻗어 있다.



종주 산행 들머리는 밀양 석골사다. 지난 11일 오후, 석골사 아래 청림산장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은 후 12일 오전 6시 여명이 트자마자 산으로 향했다. 운문산(1189m) 아래 암자가 하나 있다. 해발 1000m에 자리 잡은 상운암이다. 작은 샘에서 물 뜨는 소리를 듣고 나온 스님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일찍 올라오셨습니다.” 7시30분쯤이었다. 스님은 이곳에서 혼자 기거한다. 암자 앞마당엔 붉은 상추가 꽃밭을 이루고 있다. 그 위로 새빨간 단풍이 물들어가고 있다.



 운문산 정상에서 가지산(1240m)까지는 5.4㎞.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빠른 걸음으로 달리니 2시간 만에 이른다. 가지산은 영남알프스 산군 중 가장 높은 산이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발 아래에 다가와 있다. 그러나 억새 유람을 위한 산행을 계획했다면 여기까지는 헛걸음이나 마찬가지다. 운문산 아래 아랫재(해발 약 700m)에 한 뙈기의 억새밭이 있을 뿐, 다른 구간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그렇다고 발품이 아깝다는 말은 아니다. 산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단연 일색이다.



억새 사라지고 습지된 사자평









간월재에서 신불산으로 가는 길. 억새는 은빛 물결로 출렁인다.



가지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남동쪽으로 6㎞를 더 가면 능동산(981m)이다. 중간에 석남터널 위 석남고개를 넘는다. 석남터널은 밀양 산내면과 울산 언양읍을 잇는다. 여기까지 오는 대중교통편이 많아 산행 들머리로 애용하는 이들이 많다.



 영남알프스 억새는 사실상 능동산 다음 봉우리부터 시작된다. 둥그스름한 산봉우리들마다 억새가 만발했다. 마치 무덤 위에 삐죽삐죽 솟은 삘기 꽃 같다. 이곳에서 천황산(1189m) 아래 샘물상회까지 약 3㎞의 임도가 이어진다. 샘물상회는 라면·파전·막걸리 등을 파는 산중 점방이다. 운문산 아래에서 산행을 시작한 이들이라면 여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해발 1000m에서 꿀맛 같은 라면 한 그릇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천황산 아래 천황재(해발 약 970m). 여기서부터 억새 군락지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도 역시 간이매점이 있는데, 아낙이 “시원한 막걸리 있다”며 유혹한다. 그러나 길이 멀어 딴짓할 여유가 없다. 매점의 아낙 또한 “오늘은 그만 파해야겠다”며 함께 길을 나선다. 천황산에서 재약산(1108m)까지는 한 달음이다. 정상 너럭바위에 걸터앉으면 사자평이 발 아래다. 예전 ‘100만 평 억새’로 유명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억새가 없다. 대신 숲이 우거져 있다.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평원은 4년 전, 고산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배내골 지킴이 김성달씨가 사자평의 내력을 풀어놓는다.



 “화전민이 있을 때는 나무로 땔감을 하던 시절이니까 그 근방으로 나무가 없었겠죠, 그렇게 억새 군락이 만들어진 것이고. 반대로 화전민들이 떠난 이후 숲이 만들어진 거죠. 표충사 가는 방향으로는 고사리분교라는 학교도 있었어요. 40여 년 전, 도시에 살던 한 처녀가 이곳에 들어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네요. 억새밭에 땅을 파고 그 위로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교실을 짓고. 그래서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돌에 붙어 있는 고사리 같다’고 해서 고사리학교라고 불렀대요. 사실 산행객 중에는 사자평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드물어요. 저 아래 천황재를 사자평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사자평이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재약산에서 배내골로 내려가는 등산로도 변경됐다. 고사리분교 쪽이 아니라 주암계곡·죽전 이정표를 보고 향로봉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억새 오솔길, 간월재·신불재



배내골 북쪽, 배내고개에서 다시 이튿날 산행을 시작한다. 둘째 날은 첫날보다 짧은 약 20㎞를 걷는 길이지만, 다리 근육이 뭉쳐 있어 발걸음이 무겁다. 배내고개에서 2시간 남짓 걸으면 간월산(1083m)을 거쳐 간월재(해발 약 900m)로 내려온다. 희한하게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립공원이 아닌 지라, 간월재 억새밭 사이로 조성된 나무 데크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이들이 많단다. 대개 간월재까지 임도를 타고 차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간월재에서 남으로 가면 신불산(1209m)·신불재·영축산(1081m)이다. 현재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 억새가 가장 성한 곳이다. 특히 신불재부터 단조성터를 지나 영축산 이르기 전까지 구간이 억새 천국이다. 사람 키만큼 차오른 억새가 등산로를 침범해 길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산 정상에서 보면 억새 터널로 보이기도 한다. 혼자 걷는다면 감성지수가 올라가는 길이 될 것이고, 연인끼리 걷는다면 ‘애정지수’가 치솟는 길이 될 것 같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더디어지는 구간이다.



 만발한 억새 덕분에 간월재·신불재는 영남알프스를 통틀어 산행객이 가장 많은 구간이다. 산행 들머리는 경남 양산 배내골·통도사 방면, 울산 울주군 방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어느 길을 택하든 한나절 산행이면 억새 천국에 다다를 수 있다.



 영축산에서 시살등(981m)을 거쳐 다시 배내골로 내려와 1박2일간의 종주 산행을 마쳤다. 첫날은 유장하게 뻗은 영남알프스 산군을 조망하는 능선 길, 둘째 날은 억새에 파묻혀 지나는 길이었다. 두 구간 모두 ‘샤방샤방’ 가을을 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억새 산행 추천 코스



1 배내고개~배내골 영남알프스 종주 산행의 절반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배내고개에서 시작해 간월산-신불산-영축산-시살등을 거쳐서 내려온다(약 15㎞, 5~6시간).



2 간월재 회귀 신불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임도를 타고 간월재-신불산-영축산을 거쳐 다시 간월재로 되돌아온다. 간월재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번잡하다(약 12㎞, 5~6시간).



3 간월재~통도사 간월재에서 시작해 신불산-영축산을 거쳐 통도사로 내려오는 코스. 독수리 날개 형상의 영축산을 조망하는 구간이 압권이다(약 10㎞, 4~5시간).



4 통도사~신불산 통도사에서 시작해 영축산을 올라 신불재·신불산를 거쳐 울산 언양읍 방면으로 내려온다(약 10㎞, 4~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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