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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의 경제세상] 대기업 비리, 일벌백계가 답이다

중앙선데이 2010.10.17 06:52 188호 2면 지면보기
대기업 비리가 잇따르고 있다. 차명계좌, 비자금, 뇌물, 로비, 압수수색 같은 음침한 말들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태광과 한화그룹, 신한은행, 건설 대기업 등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공정사회를 주창하면서 사정(司正)의 힘은 동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긴 했지만 ‘글쎄’ 싶어서다. 어느 정부든 사정의 유혹을 떨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기업의 잘못마저 면책될 순 없다.

태광은 오너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차명계좌로 관리했다. 이 돈으로 케이블TV사업을 확장하면서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화는 차명계좌를 통해 거액의 자금을 조성한 후 이 돈을 오너에게 전달했다는 이유로 역시 압수수색을 받았다. 8년 전에 인수한 대한생명의 매각 특혜 의혹도 조만간 특별 감사를 받는다. 수뇌부끼리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신한금융도 차명계좌와 비자금, 로비 의혹 등을 조사받고 있다. 얼마 전엔 한 중소 건설업체 사장이 건설업계의 복마전 비리를 폭로했다. 건설 대기업을 대신해 인허가 로비에 나서 돈봉투를 주는 건 물론 담당 공무원의 자녀를 대기업에 취직시켜 줬다고 밝혔다.

아직은 의혹 수준이다. 하지만 검찰 등 사정기관이 나섰으니 곧 사실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음습한 거래로 얼룩진 부패의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차명계좌만 해도 그렇다. 흠 잡힐 일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남의 이름으로 돈을 숨긴단 말인가. 이번 사건 역시 정경유착이나 ‘정경협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숨겨놓은 비자금 중 일부는 로비용으로 쓰였을 개연성이 높아서다. 인허가권 등 기업에 줄 게 아직도 많은 정·관계와의 유착이나 협력은 기업으로선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과거의 예로 봐서도 상당 부분 사실일 게다.

불법과 비리, 부정과 부패는 우리 사회의 단골 메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그룹과 오너들은 대부분 연루돼 징역을 살았거나 재판을 받았다. 구속을 피하려고 해외로 나갔다가 슬그머니 귀국한 오너들도 많았다. 준 사람이 있으면 받은 사람도 있는 법.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처벌받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 있느냐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정경유착의 병폐는 그 뿌리가 깊고 넓다.

물론 한국만 그런 건 아니다. 미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다. 수십억 달러의 적자를 장부에서 누락한 거대기업 엔론이 그러했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주범이었던 국영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도 분식회계를 했다. 그 이면에는 역시 미국 정치인들의 협력이 있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건 인간의 본성 때문일 게다. 이기와 탐욕 말이다. 아무리 투명성을 높이고 처벌을 강화해도 근절되지 않는 건 그래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불법과 비리를 뿌리 뽑는 건 불가능하지만 조금이라도 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 해법의 단초는 징벌의 강화에서 찾아야지 싶다. 미국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건 그들이 더 양심적이어서가 아니다. 철저한 수사와 일벌백계(一罰百戒) 때문이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엔론의 최고경영자(CEO)는 24년형을, 횡령과 주가 조작으로 구속된 보안·장비 제조업체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CEO는 25년형을, 다단계 판매 사기행각을 벌였던 버나드 메이도프는 50년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우리는 다르다. 검찰이 속속들이 파헤쳐서 의혹을 풀어주리라 기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법원의 처벌 역시 솜방망이로 그친 경우가 많았다. 국민경제에 기여했다는 등의 이유로 형을 줄여주고 있다. 설령 처벌받더라도 사면이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다. 공정사회와는 한참 거리가 먼 사면을 지난 8월에 하지 않았던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사면을 하던 그 순간에 공정사회를 주창했다는 점이다. 그래 놓고 진정성을 믿어달라니. 그래, 이번에 제대로 수사해 처벌하는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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