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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애재라, 부러진 티펙이여

중앙선데이 2010.10.17 06:46 188호 14면 지면보기
조티문(弔TEE文)
유세차 2010년 10월17일에 골프인 정씨는 두어 자 글로써 티자에게 고하노니, 주말 골퍼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티펙이로되,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티펙은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 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 개월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연전에 우리 사장님께옵서 영국 출장 낙점을 무르와 스코틀랜드를 다녀오신 뒤 티펙 여러 쌈을 주시거늘, 친구와 원근 일가에 보내고, 직장 동료들도 쌈쌈이 나눠 주고, 그중에 너를 택하여 손에 익히고 익히어 지금까지 해포되었더니 슬프다. 연분이 비상하여, 너희를 무수히 잃고 부러뜨렸으되, 오직 너 하나를 영구히 보전하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불쌍하며, 또한 섭섭하도다. 나의 실력 허접하여 지갑에 돈 한 푼 없고, 욕심만 짱짱하여 일찍 올인 부르지 못하고, 가산이 빈궁하여 내기에 마음을 붙여, 널로 하여 생애에 도움이 적지 아니하더니, 오늘날 너를 영결하니, 오호 통재라, 이는 동반자가 시기하고 하늘이 미워하심이로다. 아깝다 티펙이여, 어여쁘다 티펙이여, 너는 미묘 섬세한 품질과 특별한 재치를 가졌으니, 물중의 명물이요, 플라스틱 중의 쟁쟁이라. 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추호 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33>


티잉 그라운드에 무늬와 깊이를 수놓을 제, 그 견고하고 딱딱함은 귀신이 돕는 듯하니, 어찌 인력이 미칠 바리요. 오호 통재라,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일 때도 있고, 캐디가 순하나 명을 거스를 때 있나니, 너의 미묘한 재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함을 생각하면, 자식에 지나고 캐디에 지나는지라.

플라스틱으로 집을 하고, 오색으로 실을 달아 파우치백에 넣었으니, 주말 골퍼의 필수품이라. 연습할 적 만져 보고 티샷할 적 만져 보아, 널로 더불어 벗이 되어, 여름 낮에 연습장이며 겨울날에 눈밭을 상대하여, 누비며, 호며, 감치며, 박으며, 공칠 때에, 겹실을 달았으니 페어웨이를 가르는 듯, 한 샷 한 샷 떠 갈 적에 수미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 년 동거하렸더니, 오호 애재라, 티펙이여. 금년 시월 초십일 묘시에, 희미한 라이트 아래서 티펙을 꽂다가, 무심중간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티펙이요, 잔디를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 타가 만날 넘더라, 누를 한하며 누를 원하리요. 능란한 알까기와 공교한 티샷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는 심회가 삭막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필드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이븐파 달성과 거액 수금을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티펙이여. 상향.

시월 초십일 해남 파인비치에서 원파(願 Par) 정제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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