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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잔 빼지 않고 축제처럼 즐기는 공연 만들고 싶었어요”

중앙선데이 2010.10.17 06:32 188호 10면 지면보기
“함께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
서산장학재단의 성완종(경남기업 회장·59·사진) 이사장은 재단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여럿이 함께한다는 뜻을 가진 말, ‘더불다’는 성 이사장이 강조하는 가치다. ‘장학’을 이름에 내건 재단이 장학 못지않게 문화사업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중심에 ‘가을음악회’를 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점잔 빼거나 경직되지 않고, 어우러져 축제처럼 즐기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는 성 이사장을 13일 만났다. 그는 문화사업이란 용어 자체도 생소하던 1993년 ‘가을음악회’를 시작해 올해로 17년째 이끌고 있다.

그는 미국의 ‘카네기재단’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80년대 초 재단을 방문한 경험이 서산장학재단의 밑거름이라고 했다.

“82년이었어요. 카네기 같은 공공재단이 다민족·다인종이 사는 미국 사회가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크잖아요. 꿈을 주고 비전을 제시하는 거죠. 현장을 직접 둘러보니 훨씬 인상적이었어요. 언젠가 사회사업을 한다면 카네기재단을 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고 90년 서산장학재단 설립까지 이어진 거예요.”

그리고 꿈의 무대라는 카네기홀을 방문한 경험이 ‘가을음악회’의 토대가 됐다.
“도시와 농촌 간에는 문화 격차가 존재해요. 문화가 곧 21세기의 비전인데 도농 간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비전에도 격차가 생긴다는 거죠. 대중음악은 어디서나 들을 기회가 있으니까, 쉽게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으로 출발했어요.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여서 지역문화를 업그레이드하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잘 알고 지내던 박인수 교수님을 찾아갔죠. 성악을 통해서 지역에도 폭넓은 문화를 전파해보자고 말씀 드렸어요.”

박 교수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내리 6년을 출연했다. 제자들까지 직접 섭외했다. 처음엔 지역의 대형 교회를 무대 삼아 ‘투어’를 했다. 점차 무대가 형식을 갖췄고 공연 지역도 확대됐다. 지역에 파고들어 뿌리내린 문화사업인 셈이다.

“서산장학재단보다 규모가 큰 공공 법인들이 하는 행사도 많아요. 요즘엔 지자체에서도 공연을 열고요. 올해는 ‘가을음악회’와 같은 시간에 지자체 축제가 열렸는데도 관객이 4000명이나 모였어요.” 그는 “이만큼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음악회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성 이사장은 여전히 출연 가수 선정과 선곡까지도 꼼꼼하게 챙긴다. 재단 20주년을 기념해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한 무대에 올리는 아이디어도 그가 제시했다. ‘다채로운 공연’이라는 원칙을 정했고 같은 가수를 반복해서 섭외하지 않았다. 1999·2000년, 2002~2005년 6년간 러시아의 볼쇼이극장을 직접 섭외해 ‘가을음악회’에 출연시켰을 때도 매번 다른 공연을 선보이도록 했다. 합창단, 오페라극장 솔리스트, 러시아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발랄라이카 오케스트라 등이었다. 음악회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일 때마다 관객의 호응도 커졌다.

“2002년 볼쇼이 합창단을 이끌고 ‘가을음악회’에 온 지휘자가 루드밀라 예르마코바예요. 러시아 최고의 합창 지휘자죠. 그분이 서산 공연을 마친 후에 저를 와락 껴안더라고요. 105개 국가를 다니면서 공연을 했지만 이렇게 열정적인 관객은 처음이라고요.”

수준 높은 공연은 지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주민들의 문화적 만족감을 채워줬다. 성 이사장이 느끼는 보람이면서 고민이다. 뜨거워진 관객 반응과 높아진 눈높이에 호응하는 공연을 꾸준히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남은 거다. 그는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가 커져서 내년엔 또 어떤 공연을 선보여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절로 감정이입이 되고, 긍정적 생각을 하게 되고, 함께 듣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잖아요.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을 이끄는 원천이 음악, 넓게 보면 문화인 만큼 문화사업 가치는 대단히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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