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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들의 복병

중앙선데이 2010.10.17 06:23 188호 18면 지면보기
칠레의 탄광에 갇혔던 광부 33명이 극적으로 생환한 소식에 지구촌의 매스컴들이 열광하고 있다. 모처럼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 기적과 환희의 드라마에 세계가 감동한 것이다.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구출 소식을 접한 지구촌 사람들의 마음이 잠시나마 따뜻해졌을 것 같다. 이처럼 엄청난 재난이나 사고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스컴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사람들이 이루기 힘든 걸 대리만족시켜주는 영웅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1967년 충남 청양에서 광부 양창선씨가 15일 만에 구출됐던 적이 있다. 암울했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소중한 경험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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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웅 이야기에 심취해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극적으로 구출된 광부들의 소식은 함께 기뻐할 만하다. 그렇지만 은퇴한 광부들이나 광산에 사는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평소 잊지 않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통상 광부들은 진폐증·규폐증·석면과 관련된 암에 걸리기 쉽다. 특히 칠레 광부들처럼 오랫동안 밀폐된 갱도나 혹은 지하에 갇히게 되면, 일단 햇볕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비타민 D 결핍증이 생기고 부족한 산소에 적응하기 위해 호흡이 얕아지면서 폐꽈리 세포의 허탈 상태가 올 수도 있다. 또 갑작스럽게 자외선에 노출되면 설맹과 비슷하게 눈이 멀 수도 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우주인처럼 세반고리관 등 동적인 감각이 흔들릴 수도 있다. 척추나 관절 근육 역시 운동 부족으로 매우 약해져 있을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밤낮이 일정치 않아 멜라토닌 분비가 흔들리면서 수면장애를 앓을 수 있다. 게다가 우울증, 폐소공포증, 불안신경증, 외상후 신경증에서 조증까지 다양한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최소 6개월은 자세히 검진해 보는 것이 좋다. 기존에 여러 가지 심리적 갈등이나 성격장애, 신경증 등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할 것이다. 아무래도 평온한 가정에서 살았던 광부들이 현실에 복귀하는 속도도 빠를 것이다.

칠레 광부들의 정신건강을 정말로 위협하는 복병은 매스컴의 과도한 관심일 수도 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처럼 매스컴이 급조한 전쟁 혹은 재난을 딛고 살아 나온 영웅들은 현실 감각을 잃고 붕 뜬 상태에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모처럼 받은 보상금과 명예를 순식간에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칠레 광부들에게 엘비스 프레슬리 사진을 내려 보내면서 살아 돌아오면 프레슬리처럼 유명하고 돈도 벌 수 있다고 격려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매스컴의 지나친 조명으로 일상이 흔들리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2개월 이상 어둠 속에서의 고립과 절망감에 이어 갑자기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극단적으로 대비가 되어, 이를 관장하는 자아가 통제력과 자제심을 잃을 수 있어서다. 심리적으로 보면 아주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토지 보상을 받거나 로또복권에 당첨된 다음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일시적으로 영웅과 드라마 만들기에 그치지 말고 칠레의 사고가 전 세계 광부들의 열악한 복지와 안전을 꼼꼼히 점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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