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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손길 지금도 선명, 1000년의 향기 그윽

중앙선데이 2010.10.17 05:31 188호 9면 지면보기
2층과 3층 누각을 금박으로 입힌 킨카쿠지(金閣寺)의 단풍 든 풍경.
교토(京都) 사람들에게 교토의 ‘교’는 자부심이다. 같은 말이라도 ‘교(京)’란 말이 앞에 붙으면 뉘앙스가 깊어진다. 센수(扇子·부채)가 교센수(京扇子), 닝교(人形·인형)가 교닝교(京人形)가 되면 어느새 전통의 더께가 서린다. 794년부터 1869년까지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일본의 수도로서 누려 온 영화의 흔적이다. 11월 교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참가국 문화부 기자들을 교토로 초청한 주최 측에서도 그런 의지가 읽혔다. 1000개가 넘는 고찰(古刹)의 도시로서 전통음악과 춤의 계승자들인 게이샤, 전통복식 기모노, 손으로 짜낸 기모노용 견직물, 옛 방식을 고수하는 사케 양조장 등을 통해 이들이 이틀간 보여 주고 싶어 한 것은 일본의 문화가 아니라 ‘교토의 문화’였다.

2010 교토의 가을을 걷다

옛날 절집의 오래된 나무기둥들
투어 첫날, 버스에 오른 취재진에게 통역 겸 가이드가 그림판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절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고 구두코를 바깥 방향으로 해서 직접 정리해 놓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 주며 설명하니 외국인들의 이해가 훨씬 빠른 듯했다.
첫날 코스는 절집 탐방. 우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기요미즈데라를 찾았다. 이 절의 오니시 고큐 스님은 “778년 창건 이후 10번 넘게 화재를 겪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633년 새로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이프러스로 만든 갈색 나무지붕이 독특했다. 나무기둥으로 짠 매트릭스 위에 널찍하게 만들어진 본당 무대에 올라서니 교토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오토와산 자락에 세워진 이 절은 맑은 물이 솟아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절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1 샤미센의 음률에 맞춰 전통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마이코.2 일본식 전통요리. 이상 APEC 재무장관 회의 준비위원회 제공 3 견직물 전통공예사 노지리 슈이치가 손으로 짠 고급 직물을 보여 주고 있다. 정형모 기자
다음은 킨카쿠지(金閣寺). 1397년 지어진 별장이 선종 사찰로 바뀌어 내려오다 1950년 화재로 소실, 55년 재건됐다. 3층 누각으로 층마다 건축양식의 시대가 다른데, 2층과 3층에는 옻칠한 위에 금박을 입혀 멀리서 봐도 번쩍번쩍한다. 가이드는 “가로·세로 10㎝짜리 금 조각을 20만 개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87년 일본 경제가 한창 호황일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라고 들려줬다.

오후에는 뵤도인(平等院)을 들렀다. 1052년 창건된 이 사찰에는 극락정토의 궁전으로 아미타여래를 안치하는 봉황당이 이듬해 건립되면서 옛 절의 향취를 톡톡히 풍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화재가 한 번도 나지 않아 옛모습 그대로 간직한 덕분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운중공양보살상’이었다. 구름을 타고 악기를 연주하는 보살 조각으로 섬세하면서 다이내믹한 포즈가 인상적이었다.

사이에 덴류지(天龍寺)에 있는 채식 요릿집에 들어가 점심 식사로 정진요리(精進料理)를 기다렸다. 널찍한 다다미방, 일본인들은 방석에 앉아 도시락을 바닥에 놓고 식사를 했다. 외국인들은 작은 반상에 놓인 도시락을 작은 의자에 앉아 먹었다. 일곱 가지 채소가 나오는 ‘화(花)’ 코스가 7000엔. 참깨로 만든 두부를 비롯해 단풍잎 모양의 떡, 새큼한 연근무침 등이 차례로 나왔다. 다섯 가지 방법(날것, 조린 것, 구운 것, 튀긴 것, 찐 것)으로, 다섯 가지 맛(달고, 시고, 맵고, 쓰고, 짜고)과 다섯 가지 색(적·청·황·백·흑)을 구현한다는 설명을 외국인들은 더 흥미롭게 들었던 것 같다.

색다른 체험, 그 이름은 전통
교토를 대표하는 공업은 직조업. 비단 등을 짜는 니시진직(西陣織)이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기모노의 70%가 교토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와타분(渡文)주식회사 와다나베 히로시 사장은 설명했다. 수직기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홍보관인 ‘오리나수칸(織成館)’으로 들어가니 옛날식 베틀 같은 것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백발의 노지리 슈이치는 이곳에서 일하는 전통공예사다. “일본 전통가면극 ‘노’에 쓰이는 기모노는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고 말한 그는 “옷감을 묵직하게 만들기 위해 옷감 속에 철사를 넣기도 한다”며 직물 짜는 방법을 직접 보여 줬다. 불을 비추면 색깔이 달라지는 실을 개발한 것도 고급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점심은 어린 게이샤를 뜻하는 ‘마이코’의 공연과 함께했다. 화려한 기모노와 머리 장식, 얼굴에 흰색 분칠을 한 젊은 처자 두 명이 들어와 샤미센 음률에 맞춰 춤과 노래를 들려준다. 그러더니 손님들 사이를 찾아다니며 말벗도 되고 간단한 게임도 한다. 노란 기모노 차림의 다네후미는 올해 열일곱. “누군가 나를 지켜본다는 것이 좋고 큐티해 보여서” 열세 살 때부터 마이코가 됐다고 한다. 아직 어려서 루즈를 아랫입술에만 칠했다. 가장 힘든 점은 샤미센 연주라고.

다음 차례는 교토국제만화박물관. 만화학부가 있는 교토 세이카 대학이 중심이 돼 도심 속 80년 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2006년 11월 개관했다. 관장 요로 다케시는 “헤이안 시대 그림 두루마기에서부터 만화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며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교토에 만화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만화를 볼 수 있는 이곳에는 약 30만 권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이 중 5만 권은 즉시 빌려 볼 수 있다. 연도별로 주요 잡지들이 전시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은 부모들도 추억의 한 페이지를 꺼내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호빵맨’으로 유명한 야나세 다카시(91)의 전시회도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사케 양조장. 탄잔(丹山)주조의 사케 전문가 나기사 하세가와가 “햇곡식을 수확한 뒤부터 본격적인 주조 과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은 별로 보여 드릴 게 없다”면서도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공장을 두루 구경시켜 줬다. 다이긴조는 물론 이번에 새로 샴페인처럼 만든 사케도 시음해 보라며 권했다.
미슐랭 스타가 붙은 음식점이 가장 많은 도시가 파리(64곳)도 뉴욕(55곳)도 아닌, 교토(85곳)인 것도 다 이런 연유가 있었으리라. 이렇게 마을마다 특색 있는 방법으로 만든 술과 음식, 전통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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