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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계획의 남녀 유별

중앙선데이 2010.10.17 05:21 188호 30면 지면보기
노후를 준비할 때 주목해야 할 개념 중 하나로 ‘건강한 나이(health age)’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 가운데 질병 등으로 건강하지 못한 수명이 남자는 10.3%, 여자는 12.1%에 달한다. 쉽게 말해 자신의 기대수명이 80세라면 8~10년간 병원에 입원하거나 요양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여러 가지 조사를 해보면 베이비부머들은 대부분 자신의 기대수명을 지나치게 짧게 잡고, 건강하지 못한 기간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 만큼 병상에 누워 있을 기간에 대한 대비책도 소홀히 여긴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70대 초반의 장(張)모씨는 지난해 회사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고 은퇴생활을 시작했다. 노후에 살 곳을 찾으러 여러 군데를 다녀보았지만 썩 내키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60대 후반의 부인이 당뇨병 말기여서 혈액 투석을 해야 되고 간병 서비스가 필요해 선택 폭은 더욱 좁아지는 상황이다. 농사일을 하는 전원생활은 도시 출신인 자신의 적성과 체력에는 맞지 않을 뿐더러 병원이 너무 멀어 일단 제외했다. 도심 실버타운은 시설은 좋은데 노인들이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평생을 활발하게 살아온 자신의 생활태도와 맞지 않았다. 은퇴이민, 지방의 타운하우스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하지만 막상 가보면 건물만 덜렁 지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의료서비스와 문화생활은 엄두도 못 낸다. 고민 끝에 일단 자기 집에서 그대로 눌러앉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언젠가 자신의 건강까지 나빠질 때 부부가 어떻게 노후생활을 하느냐다.

우리나라에선 실버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해 선진국처럼 은퇴자를 위한 다양한 요양·의료 서비스가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전국 노인의료시설은 3321곳이다. 자택 거주 노인을 위한 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1만1000곳을 넘는다. 하지만 이들 요양기관은 규모가 영세하거나 시설이 열악한 편이다. 또한 전문인력이 부족해 서비스 질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 노인간병이나 요양을 전문적으로 사업화하는 기업들이 필요한 이유다.

따라서 베이비부머들은 노후를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첫째, 자신의 기대수명을 길게 잡아야 한다. 기대수명이 매년 약 3개월씩 늘어나는 추세여서 2025년께 남성 평균수명은 80세, 여성은 86세에 달한다. 하지만 건강이 좋으면 평균수명보다 5년 이상 더 생존할 수 있는 만큼 남성의 경우 85세 정도, 여성의 경우 91세 정도로 가정해 노후계획을 짜는 게 좋을 것 같다.

둘째, 건강하지 못한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 자신의 수명 중 후반기 10% 정도는 건강이 아주 나빠져 간병이나 요양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이 시기를 위해 자산 중 일부분을 저축하거나 다양한 금융상품을 활용해야 한다. 자신이 가입한 보험상품들도 재점검해 간병이나 요양에 필요한 비용이 충분히 나오는지 따져 봐야 한다.

셋째, 여성들은 남편 사별 후 10여 년을 더 살게 되는 만큼 노후 대책을 추가로 보완해야 한다. 아내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남편은 아내의 간호를 받으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만, 아내가 숨질 때 남편은 십중팔구 ‘저세상’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홀로 살아나갈 수 있는 연금소득 또는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는 자신의 건강과 재산·스타일에 따라 노후생활 구조를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품위를 잃지 않는 은퇴 후 삶을 영위하려면 좀 더 많은 노력과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은퇴나 노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부간의 노후생활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재룡 연세대 경영학박사(투자론). 한국펀드평가사장, 동양종합금융증권 자산관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행복한 은퇴설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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