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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뒤흔드는 시장미술…시장은 ‘예술’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중앙선데이 2010.10.17 04:51 188호 4면 지면보기
홍콩 아트페어 전시장 풍경
1. 2009년 5~10월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66) 대규모 회고전.
2. 2010년 2월 3일 런던 소더비 경매, 자코메티의 작품 ‘걷는 사람’이 당시 예술작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6500만1250파운드(수수료 포함, 약 1197억원)에 팔림.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 심상용의 『시장미술의 탄생』

3. 2010년 6월 한 달간 가고시안 갤러리 런던 지점에서 대규모 자코메티 관련 전시.
4. 2010년 6월 중순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 다수의 자코메티 작품 출품.

다른 장소에서 비연속적으로 일어난 네 가지 일을 사건일지 방식으로 정리해 본다. 자코메티에 대한 이 새삼스러운 조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눈치 빠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든 과정의 결과 구설에 오르고 있던 가고시안 갤러리의 자코메티 조각의 사후 에디션 판매 논쟁이 종지부를 찍고, 자코메티라는 이름은 더 많은 컬렉터의 소장품 목록에 포함됐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사건을 다시 풀어 보면 1)미술관이라는 비상업적 장소에서의 전시를 통한 작가의 미술사적 검증 2)경매 최고가 기록으로 투자적 가치 확인 3)새로운 투자 상품의 선정과 거래 활성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고도의 마케팅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부정할 근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시장미술의 탄생』(2010·아트북스·1만6000원)에서 저자 심상용은 현대미술 시장의 구조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틀을 제시한다. 이 책은 최근 출판되고 있는 미술시장 실무자들의 피상적인 체험기 혹은 소문 활자화하기와는 차원이 다른 체계적인 분석을 보여 준다. 그의 어투는 더러 울분에 차 있고 비관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미술시장과는 거리가 먼 평론가이며 교수다. 또 현재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미술시장에 대해 충분히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는 저자가 제출한 시장에 대한 보고서는 가장 투명하게 시장의 구조를 보여 준다. 사태가 지나치게 과장돼 있고 혼돈에 빠졌을 때 네거티브 필름의 위력은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되는 법이다.

이 책의 주제는 미술시장이 아니라 ‘시장미술(Market Art)’이다. 시장미술이란 “‘과도하게 시장화된’ 예술의 유형으로, 현대미술의 새로운 학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장미술의 등장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미술시장뿐 아니라 미술을 둘러싼 여러 제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그 상관관계를 분석해 낸다. 저자는 미술시장 자체가 아니라 시장미술의 등장이라는 미술사적 관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오랫동안 잊고 있던 중요한 문제, 바로 예술의 본질이란 근본적인 문제를 환기시킨다. 미술시장이라는,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예술 자체에 관한 논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예술의 본질이라는 확고한 준거점을 확보하고 논의를 펼쳐 나간다.

1990년대 전후 글로벌 아트 마켓의 성장과 더불어 시작된 시장미술의 시대에는 “예술적 성취는 오차 없이 화폐 단위로 환산되고, 탁월성은 고가로 입증된다”는 그릇된 신념이 세상을 지배한다. 예술의 본질이 투자나 자금의 운용 같은 사고 방식과는 전혀 무관한 가치에 근거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훌륭한 투자처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더 나아가 시장의 원리는 미술의 전 영역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돈 되는 작가’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돈 되는 작가’ 중심으로 미술의 장(場) 전체를 재편”하고 있다. 불편하고 무시무시한 진실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중심국의 부의 증대와 주변국의 빈곤을 촉진했듯 서구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아트 마켓의 중심 세력이 강화되면 될수록 이 중심에서 먼 시장과 미술계는 언제나 게토화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이 글로벌 아트 마켓은 PPR그룹의 회장이자 크리스티 경매사의 최대 주주인 프랑수아 피노, 로만 아브라모비치 같은 수퍼 리치 컬렉터, 각국의 주요 지역에 체인점을 둔 기업형 화랑, 소더비와 크리스티 등 거대 경매회사 등 강력한 재정 동원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거대 경매사에서 행해지는 가격 결정은 미술시장을 통치하는 법이 됐다.

1차 시장인 갤러리와 2차 시장인 경매의 유착, 대중매체의 무비판적인 받아 적기, 비상업적 기관인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지위 약화, 평론가와 미술사가의 발언권 축소, 주식과 부동산 같은 비예술시장과의 직접적 연동성 역시 시장미술 시대의 특징이다. 글로벌 아트 마켓의 주역들, 즉 중심화된 미술 권력은 미술품으로 막대한 수익 올리기를 실행해 보임으로써 미술시장을 확실한 투자처로 인식시키고 강력한 미디어 조작을 통해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 낸다. 탁월한 자기복제 시스템을 통해 시장미술이 번성할 수 있는 매트릭스를 촘촘히 짜고 있는 것이다.

아트페어와 경매사가 비상업적 형식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며 작품 가치를 검증하는 미술관의 기능을 대신함으로써 결국 “고가의 작품=가치 있는 작품”이라는 등식을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고가품을 구매하는 수퍼 리치 컬렉터의 취향 추종하기, 그들의 취향에 맞는 돈이 되는 스타 작가 열망하기, 소수의 글로벌 아트페어의 강화와 지역 미술시장의 붕괴 등 시장미술의 발전 결과는 결국 창조성의 고갈과 예술의 몰락으로 이어질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세력들의 우행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놓은 이 책은 그 꼼꼼함 때문에 거꾸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영악하게 이 책을 읽으면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행해지는 전시를 주목하고, 그것을 경매회사의 기록을 통해 검증하며, 거대 갤러리에서 판매하는 작품을 사면 미술 투자 불패 신화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운이 좋은 경우에 말이다. 그러나 얇지 않은 책을 쓴 저자의 노고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가 주장하는 바를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예술의 몰락을 초래한 작금의 현실 앞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저자의 고민은 깊기만 하다. 저자는 시장의 자율성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불황에 빠진 미술시장의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는 것은 결국 글로벌 아트 마켓의 강자일 뿐이며, 이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계에 매우 적대적인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시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답은 시장 내부에 있지 않다. 시민적 양심의 회복, 미술의 공적 가치를 회복하는 게 가장 본질적인 탈출구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뜻을 새기기 위해 길게 인용해 본다. “미술이… 진정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것들, 곧 포용·겸허·양심·감성·감수성·아름다움·직관이라는 자질들의 출처가 되고자 나설 때, 시장은 그와 같은 시도에 잠재되어 있는 창조적 속성을 보존하고, 그 실제 주체인 작가들을 지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혜택을 공유하는 간접적인 산업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어쩌면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의 구체성에 비하면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너무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만드는 것은 현실주의자들이라 하겠지만, 사실 세상을 바꾸도록 강제하는 것은 이상주의자들이다. 비록 제도화의 힘은 더디고 약하겠지만,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람의 일이니 사람들의 자성은 아무리 촉구해도 부족하지 않다. 고민하는 소수, 한 줌의 이상주의자는 다수의 광기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부패로부터 구제하는 소금의 역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에 충격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10년간 큐레이터로 일했다. 『러시아 미술사』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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