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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미의 아티스트 인 차이나 <1> 가면 시리즈 이어 새 스타일 선뵌 쩡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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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작가 중에 자기복제를 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친구나 친척들이 한 점만 하고 부탁하니까, 정 때문에 마지못해 그려 주죠. 그런 면에서 자기관리와 절제가 뛰어난 작가예요.” 자신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 준 ‘가면 시리즈’가 정점을 달릴 때 작가는 더 이상 이 시리즈를 그리지 않겠다고 붓을 꺾었다. “컬렉터들이 사 달라고 줄을 섰는데, 잘 팔리는 그림을 작가가 더 이상 그리지 않겠다고 하는 건 갤러리스트에게는 당연히 손해죠. 하지만 작가의 판단을 존중했어요. 그 이유가 극히 타당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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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가의 충실한 감정은 지난 십수 년간 시기마다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다. 병원 풍경과 푸줏간 고기를 그렸던 초기작, 앞서 말한 마스크 시리즈와 최근작 선묘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 소재와 표현방식은 작가의 내면을 따라 변화돼 왔다. ‘폴리티컬 팝’으로 대표되는 중국 현대미술의 일련의 흐름과 달리 쩡판즈는 정치를 철저하게 외면했던 셈인데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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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심미안을 일깨워 준 사람은 어머니다. 작가의 어머니는 가난한 시절에도 동네에 양식당이 개점하면 시계를 팔아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그 시절 ‘컬처맘’이었다. 철마다 피는 꽃의 향기를 맡게 했고, 여행을 통해 오감을 일깨워 줬다. 언제나 신경 써서 단장해 주는 어머니 덕에 그는 항상 반에서 눈에 띄는 아이였는데, 수줍은 성격 탓에 이것이 오히려 고통이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대답하지 못했던 것. 선생님이 말을 거는 순간 머릿속이 빙빙 돌고 속이 울렁거려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늘 ‘얼굴은 곱상한데 쓸모없는 바보’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모범생 표시인 빨간 스카프를 졸업할 때까지 못 받은 건 전교에 혼자뿐이었다.
이런 ‘열등생’이 대학에 들어가 미술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으니 대학 입학날의 자신감이야말로 지금의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데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빨간 스카프에 대한 아픈 기억을 이제는 추억처럼 웃으며 말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정신의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에게 가장 최근에 팔린 작품의 가격을 물었다. “별로 안 팔아 잘 모르겠다”며 웃는다(최근 공개된 작품 가격은 지난 6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서 팔린 20억원).“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건 작품의 창조력이다. 대중의 나에 대한 기대는 까다로워지고 더욱 높아졌다. 진부함은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세속적인 성공과 명예를 떠나 예술세계에 빠져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야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것 같다.”
세속적인 잣대로 모든 걸 다 가진 작가는 소박한 작가적 삶으로의 회귀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명예로운 근황을 함께 전했다. 이번 상하이 전시작 중 네 작품을 조만간 파리와 베네치아 최고의 미술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아직 계약 상태라 거래가 성사된 건 아니니 박물관과 미술관의 이름을 밝힐 순 없다고 했지만 짐작은 갔다. 이제 막 도착한 독일의 저명한 출판사 하체 칸츠(Hatje Cantz)에서 출간된 도록 역시 명예로운 일이라고 했다. 샘플로 아직 수중에 한 권뿐이라는 도록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설명과 함께 보여 주고는 바로 옆구리에 끼었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같이 맑아 빙긋 웃음이 났다. 부유해지면 예술혼을 잃게 마련이라는 성급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준 쩡판즈 작가와 눈앞의 이익보다 예술가의 진정성을 믿는 갤러리스트 진현미 대표. 배짱 맞는 두 사람은 벌써 다음 전시를 기획 중이다. 진 대표의 아트 디렉팅으로 내년 10월께 항저우(杭州) 저장(浙江)성 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호 10경을 노래한 문인들의 시구에서 영감을 얻은, 항저우의 인문·역사에 부합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상하이 전시는 끝났지만 상하이 와이탄 미술관에서 50m쯤 떨어진 유니언 처치(Union Church)에 유일하게 전시됐던 쩡판즈의 작품 마리아는 이달 말 엑스포가 끝날 때까지 같은 장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베이징 사진 문덕관(studio lamp), 쩡판즈 제공
쩡판즈 1964년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출생. 91년 후베이미술학원 유화과 졸업. 가장 주목받는 3세대 중국 현대미술의 선두 주자로 그의 그림은 매 해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94년 시작해 다양한 패턴으로 수년간 지속된 가면 시리즈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작품에서 정치색을 배제한 대신 중국 현대사 속에 처한 자신과 사람들 심리에 집중한 그의 그림은 어떤 정치적 모티브보다 많은 사람에게 진실한 감동을 선사해 주고 있다.
진현미 대표 베이징 다산쯔 차오창디 예술구에서 자신의 브랜드 ‘아트미아’ 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블루칩 작가들과 교유하며 아트미아를 베이징의 메이저 화랑 대열에 합류시켰다. 쩡판즈 작가와는 베이징 다산쯔 차오창디 예술구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틀리에와 갤러리가 이웃해 있는 이웃사촌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다.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레몬트리’에 중국 대표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소개하는 ‘베이징 아트 산책’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