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V 나와달라, 성금 주겠다” … 33인 영웅 돈·인기 거머쥐다

중앙일보 2010.10.14 01:41 종합 4면 지면보기
10주 만에 사지(死地)에서 구출된 광부들은 매몰사고 전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불굴의 정신력과 끈끈한 동료애, 연대정신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킨 33인의 ‘영웅’에게 곳곳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생역전’ 180도 달라질 삶

먼저 광부들은 병원에서 퇴원한 뒤 칠레 대통령궁을 방문할 예정이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구조작업이 시작되기 전에 이들을 초청했다. 스페인·영국·그리스도 이들을 초대했다. TV 출연 요청도 줄을 잇고 있다. 물론 모든 여행 경비와 편의를 제공하는 조건이다.



‘돈방석’도 예약돼 있다. 사촌의 구조를 기다리며 캠프 에스페란사에 머물러 온 아르놀도 플라사(46)는 “첫 TV 인터뷰 대가로 2만 달러(약 2200만원)의 출연료를 제시한 언론사가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매몰 당시의 경험을 책이나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도 쇄도하고 있다. 실화 저작권 온라인 중개업자인 스콧 맨빌은 책 저작권료가 1만 달러 선, TV 드라마 판권 등의 경우 5만~1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칠레의 탄광 재벌이자 자선 사업가인 레오나르도 파르카스는 이미 매몰 광부 1인당 1만 달러(약 1100만원)씩을 각자의 이름으로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광부들의 반년치 월급이 넘는 액수다. 광부와 가족들을 돕기 위한 국민 성금도 모금 중이다. 스페인계 산탄데르은행은 지난 1일 “광부와 가족들을 돕기 위해 계설된 계좌에 벌써 34만919페소(약 7800만원)가 입금됐다”고 밝힌 바 있다.



거액의 소송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33명의 광부 중 27명은 매몰사고가 일어난 광산 주인인 산 에스테반 회사를 상대로 10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안전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이유다. 정부 감독기관을 상대로 한 소송도 계획돼 있다.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도 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자국 광부인 카를로스 마마니가 귀국하면 “집과 안정된 직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볼리비아 국영 에너지회사 YPFB가 유력한 새 일자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광부들에게 닥칠 이 같은 급격한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칠레 산티아고대학 심리학과 세르히오 곤살레스 교수는 “그들은 영웅이기 전에 희생자”라며 세심한 보호·관찰과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BBC도 심리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밀폐된 지하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광부들에게 심리·육체적 치료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출 후 몇 주는 기쁜 마음에 정신없이 보내겠지만, 이후 사고 때의 기억이 자주 떠올라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CNN도 “오랫동안 지하생활을 하며 수분 부족에 시달린 광부들이 갑자기 영양 상태가 좋아지고 생체시계가 바뀌면서 신장질환 등의 병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광부들이 일상에 복귀한 뒤 외상후스트레스성 장애(PTSD)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사고 상황에서 학습된 불안으로 인해 어둡거나 좁은 공간 등 사고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실제로 2006년 호주 태즈메이니아 금광에서 14일간 매몰됐다 구조된 광부 브랜트 웹은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 얼마 동안은 새장 속에 갇힌 새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고 말했다.



지하에서는 생존을 위해 하나로 단합했던 광부들이 일단 지상으로 올라온 뒤 ‘돈과 명예의 유혹’ 앞에 서로 반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AP통신은 실제로 구조작업 개시를 앞두고 일부 광부 가족 사이에, 또 가족과 가족 사이에 이미 이 같은 갈등이 노출됐다고 전했다.



김한별·이승호 기자



◆캄파멘토 에스페란사(campamento esperanza)=현장에선 ‘캠프 에스페란사’로 줄여 부른다. ‘희망 캠프’라는 의미. 매몰 광부 33명의 가족·친지들이 사고가 난 산호세 광산 입구에 마련한 임시 거처. 광산이 붕괴된 8월 5일 만들어졌다. 17일 뒤 광부들의 생존이 확인된 뒤 ‘에스페란사(희망)’라는 이름이 붙었다.



◆산 로렌소(San Lorenzo)=이번 구조작전의 이름. 가톨릭교의 성인인 성(聖) 로렌소(라우렌티우스)를 의미. 칠레에서는 광부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된다.



◆페닉스(Fenix·사진)=불사조. 광부들을 실어 나른 구조용 캡슐의 이름.



◆팔로마(paloma)=비둘기. 광부들이 69일간 머문 갱도로 식량·의약품·편지 등을 실어 나른 지름 12㎝의 금속 캡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