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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돈 주고받은 사람만 처벌받다 보니 …

중앙일보 2010.10.14 01:35 종합 6면 지면보기
“표준품셈이요? 문제는 많죠. 그런데 회사 입장상 자세히 얘기하는 건 좀….”



익명을 요청한 한 건설업체 관계자가 본지 탐사기획팀의 취재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며 한 말이다. 표준품셈 제도가 건설비 부풀리기의 한 원인으로 지적받는 점은 인정하지만 내놓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업계만이 아니다. 건축·토목 관련 교수·연구원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말을 아꼈다. 추첨에 의해 언제든지 심의위원으로 위촉돼 건설회사들의 로비를 받을 수 있는 이들도 이해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형 건설사의 로비스트였다고 고백한 하윤성 사장(가명·본지 10월 13일자 1, 4면) 역시 처음에는 밝히기를 주저했다. 자신이 부조리한 건설업계 관행의 피해자인 동시에 비리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민을 가기로 결심하고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다. 건설업계의 비리를 들여다보는 일은 숱한 사람과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녹록지 않았다.



건설업계의 비리가 쉽게 없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제도적 폐쇄성이다. 설계와 시공을 한 업체가 동시에 진행하는 턴키 제도 아래서는 수십억원의 설계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업체들은 입찰에 끼어들기 어렵다. 자연히 ‘대형 건설사,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그렇다보니 ‘턴키 폐지’를 외치던 중견 업체들이 대형 건설사가 돼 기득권을 가진 뒤에는 ‘턴키 유지’로 입장을 180도 바꾸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비리를 들켜도 정작 해당 기업은 처벌받지 않는 현실도 문제를 키운다. 지난해 9월 불거진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내 공사 입찰비리 사건은 돈을 주고받은 건설사 임직원과 공기업 간부만 사법처리됐고 관련 기업은 멀쩡했다. 2008년 서울 동남권 유통단지 입찰비리 사건 때도 28명의 건설사 직원·공무원·교수 등이 기소됐지만, 해당 건설사는 사법처리도 행정처분도 받지 않았다. 올 초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7년부터 3년간 조달청 국가전자입찰시스템인 ‘G2B’에 등록된 부정당업자(비리 등으로 문제가 된 업체) 제재는 총 3639건 중 0.74%인 27건에 불과하다. 대형 건설사는 그나마 한 곳도 없다.



물론 건설업계 전체를 비리 집단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사회’가 화두인 요즘에도 신종 수법으로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가뜩이나 건설업계가 어려운데…” 하는 하소연도 들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의 기틀을 다져야 건설업계 전체에 득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남형석 탐사기획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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