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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광부 버티게 한 건 막장정신 … 한강 기적 시작된 곳도 막장”

중앙일보 2010.10.14 01:10 종합 14면 지면보기
“칠레 광부들이 두 달여 동안 버틴 것도 광부 특유의 ‘막장정신’ 덕입니다.”


‘탄광촌 연구 박사’ 정연수씨

13일 지구 반대편, 칠레에서 벌어진 광부들의 구조작업을 지켜보며 탄광연구자 정연수(47·사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 검은 땅 밑에 갇혀 있으면 마치 죽어서 관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도 광부들은 꿋꿋이 내려갑니다.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서지요.”



정씨는 탄광촌인 강원도 태백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어렸을 때 그림대회에 나가면 항상 시냇물을 검게 그려 선생님을 놀라게 하곤 했다. 1982년 태백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장성광업소에 입사해 10년을 일했다. 석탄산업 호황 덕에 광업소는 당시 인기 있는 직장이었다. 관리직으로 입사한 정씨에게 지하 1㎞ 밑에서 펼쳐지는 광부들의 세계는 흥미로웠다. “순수한 호기심에서 한 달에 열 번은 갱내에 들어갔어요.”



그는 다니던 광업소가 폐광된 이후 직접 탄광촌 연구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릉원주대에서 탄광 문학 연구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농촌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탄광에 들어온 사람들의 꿈은 돈을 모아 귀향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된 탄광일을 마치고 술 한잔을 걸치다 보면 월급은 헤프게 사라졌다. 3년, 5년을 기약하고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1990년대 폐광이 될 때까지 탄광촌을 떠나지 못했다. 전국 347개였던 탄광은 현재 5개로 줄었다. 탄광촌은 위험한 일터였다. 탄광노동자의 재해 비율은 일반노동자의 10배에 달한다. 1980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3000명이 탄광사고와 진폐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 번 사고가 나면 몰살당하기 때문에 ‘광부들은 제삿날이 같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쉬는 날도 비슷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생일이 비슷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요.”



탄광촌은 한 개 동(건물)에 다섯 가구가 살아 옆집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도 훤히 알 수 있었다. 석탄재 때문에 아이들의 옷과 줄에 걸린 빨래를 제외한 풍경이 온통 잿빛이다. [대한석탄공사 제공]
이런 특수성은 탄광촌만의 독특한 문화와 금기들을 탄생시켰다. 적색과 청색이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던 광부들은 도시락을 항상 붉은색과 파란색 보자기로 둘러맸다.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도 사(死)자를 의미하는 네 주걱을 담는 것은 피했다. 인사법도 독특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은 영영 갈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쓰지 않았다. 위험을 공유하다 보니 의리도 강했다. “모양도 구조도 비슷한 사택촌에서는 밤중에 남의 집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다반사였죠. 고단함과 술에 취한 광부가 아무 집에서나 쓰러져 자면 이불을 덮어주고 다음날 돌려보내곤 했답니다.” 탄광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가정이었던 것이다.



정연수씨는 막장이란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막장은 한강의 기적이 시작된 곳이자 광부들의 마지막 희망이었죠. 그들이 캐낸 희망으로 우리가 한때 따뜻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강릉=박정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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