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ar&] 사라장 8살 신동, 그리고 20년

중앙일보 2010.10.14 00:15 경제 22면 지면보기
어떤 이는 사라 장(30)을 볼 때 골프선수 미셸 위를 떠올린다고 했다. 둘 다 미국인들은 미국인이라고, 한국인은 우리 사람이라고 느끼는 스타다. 생김새는 동양적이기도, 서양적이기도 하다. 태도와 생각 또한 미국식과 한국식을 완벽하게 갈아입는다.



사라 장은 이처럼 동·서양 음악계에서 동시에 사랑을 받는다. 우리는 또 그의 영리함을 좋아한다. 사라 장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작품과 장르를 골라 흔들림 없이 자랐다. 8세에 신동으로 반짝하고 나타난 후, 곁눈질하지 않았다. 화려하고 분방한 자신의 음악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작곡가를 골라 앨범을 내고 세계적인 무대에 섰다. 모두들 세계적 연주자라고 자신을 홍보할 때, 사라 장은 그 표본을 ‘실적’으로 보여준다.



미국ㆍ유럽의 웬만한 유명 오케스트라가 매년 콘서트 시즌 계획을 발표할 때 사라 장을

리스트에 올린다. 또 여름마다 각 나라에서 열리는 음악축제에서도 일류 대접을 받으며 초청된다. 매니지먼트사ㆍ음반사와의 계약 조건 또한 상위급이다. 지난해 12월과 지난달 내한 무대에서 한국 청중은 객석을 가득 채우며 사라 장을 환영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대중적인 스타로 자리했을까. 20년 동안 그가 걸어온 길에 해답이 있다.



글= 김호정 기자, 사진= 김상선 기자



빨간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올려 묶은 소녀가 턱시도 입은 어른들 앞에 서 있다. 왼쪽 턱에는 바이올린을 끼고 활은 앞쪽으로 향하고 있는 사진이다. 사라 장이 데뷔한 앨범의 표지다. 첫 곡은 스페인의 작곡가 사라사테로 시작한다. 오페라 ‘카르멘’을 변주한 이 작품은 난해한 기교와 특유의 리듬감 때문에 까다롭다.



만 열 살의 사라 장은 화려한 테크닉으로 이 작품을 소화했다. ‘신동’ ‘천재’란 단어가 아깝지 않다. 하지만 이 연주에는 듣는 이를 잠시 숙연하게 하는 면이 있다. 사라 장은 확신을 가지고 음악을 이끌어 간다. 단순히 손가락만 잘 돌아가 감동적인 연주가 아니다. 빠른 속도와 기계 같은 정확성 때문에 신기한 연주도 아니다. 이 어린아이는 자신이 치밀하게 설계해 놓은 음악을 묵묵히 따라간다. 좋은 기술은 뒷받침일 뿐이다. LP로 처음 나왔던 앨범은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높은 값에 거래된다.



데뷔 앨범을 내놓은 지 내년이면 꼭 20년이다. 음반으로 처음 만났던 팬들이 예상했던 대로 사라 장은 주관이 뚜렷한 음악가로 자랐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가는 것 또한, 20년 전 음반에서 예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다.



사라 장이 하지 않는 것



그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지휘요? 어휴, 저는 절대 못해요.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처럼 완벽한 지휘자들과 어려서부터 연주했잖아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어요. 물론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자주 했으니까 그들의 음악에도 관심이 있지만, 그들이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딱 들어요.” 독주자로 시작해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꿈꾸는 수많은 연주자 사이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지휘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라고 잘라 말한다. 어려서부터 세계 톱 클래스의 지휘자와 함께 섰던 경험은 천재 또한 겸손하게 만들었다.



완벽할 것 같지 않으면 아예 안 하는 것도 성격이다. 또 하지 않는 게 레슨이다. “이상하게 저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없어요. 저 혼자 연습할 때는 알겠어요. 제가 어느 부분이 부족하고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말이죠. 그런데 다른 사람을 가르쳐주려고 하면 도대체 어떤 게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왜 만족할 만한 음악이 나오지 않는지 알 수가 없어요.” 요즘도 모교인 줄리아드 음대와 각 나라의 대학에서 그를 초청한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하고 있다.



사라 장이 ‘밥 먹듯’ 하는 것



이래서 그는 ‘외도’를 허락하지 않고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다. 차이콥스키ㆍ멘델스존ㆍ시벨리우스처럼 바이올린 협주곡의 ‘기본 3종’을 끝내고는 슈트라우스ㆍ골드마크 등 신선한 협주곡을 골라 녹음했다. 프랑스 소나타 등의 앨범을 내놓기도 했지만 주로 협주곡 위주로 경력을 쌓는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대형 작품이 그의 적성에 맞는다는 얘기다. “협주곡은 저에게 밥과 고기 같아요. 기본으로 이 메뉴를 먹고, 그 다음에 실내악이나 소나타처럼 비교적 작은 편성의 음악들을 즐기는 거죠.”



이처럼 세계적인 지휘자ㆍ오케스트라와 녹음ㆍ연주를 했고, 수많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소화한 그에게 무기력함이 찾아오진 않을까. 이제는 꼭 서 보고 싶은 유명 공연장이나, 함께 연주하고 싶은 음악가도 없을 상황이니 말이다. 사라 장은 “손가락이 안 돌아가 은퇴하기 전까진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다. “아직 저의 색깔을 더 확실하게 보여줄 일이 남았어요. 같은 곡을 해도 ‘사라의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저만의 특색을 분명히 할 거예요. 1년에 100회 연주를 하고, 집에 있을 시간은 일주일 정도뿐이에요. 그래도 계속하는 건 무대가 주는 순간의 짜릿한 기쁨 때문이죠.” 이처럼 사라 장에게는 아직 풍부한 자원이 있다. 보여주지 않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미처 연주하지 않은 작품도 많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의 작곡가들이 그에게 새로운 음악을 헌정하는 일이 많다. 지난해 한국에서 초연한 테오파니디스의 ‘판타지’ 또한 사라 장을 위해 작곡된 곡이다. “앞으로도 작곡가들과 작업을 할 거예요. 새로운 일은 언제나 저를 흥분시켜요.”



사라 장은 데뷔 앨범 20주년을 맞아 “거실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 같은 음반을 내놓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친구들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에 딱 맞는 아이디어다. 사라 장은 TV 프로그램에 나와 무대 드레스가 터진 얘기를 하고, “한국에 머물 때 꼭 길거리 레스토랑(포장마차)에 가고 싶어요”라는 서툰 한국어도 애교가 되는 매력적 아가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언니’ ‘오빠’라고 부르는 특유의 화법도 있다. “각종 직급을 뜻하는 한국어가 어려워서”라는 이유가 사랑스러워 슬그머니 웃음도 나온다. 바이올린 케이스 안쪽에는 남동생의 사진을 붙이고 다닌다. 자신의 일에서 완벽하고, 인간적으로는 따뜻한 사람을 대중은 사랑한다. ‘슬럼프 없는 신동’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사라 장은



1980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1986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 입학



1990 뉴욕 필하모닉과 데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갈라 콘서트



1991 데뷔 앨범(EMI) 발매



1993 미국 뉴스위크지 ‘천재의 수수께기’에 소개



1998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ㆍ녹음



1999 에이버리 피셔상 수상



2006 뉴스위크지 선정 ‘세계의 여성 리더 20인’



2009 18번째 앨범 발매




시시콜콜 사라 장의 라이벌



한·피셔·얀센 …‘바이올리니스트 여제’ 꿈꾸는 셋




힐러리 한, 율리아 피셔, 야니네 얀센(왼쪽부터)
범위를 세계로 넓히면 사라 장에게도 강력한 라이벌이 있다. 비슷한 또래의 힐러리 한(30), 율리아 피셔(26), 야니네 얀센(32)은 사라 장의 ‘라이벌 트로이카’다.



미국 태생의 한은 12세에 화려하게 데뷔한 후 바로크 시대의 바흐부터 20세기 쇤베르크까지 소화하며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스타일은 세심하고 야무지다. 세계 무대에서의 인지도가 사라 장과 가장 비슷한 정도로 올라가 있는 연주자다.



피셔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동시에 연주하는 독특한 음악가다. 11세에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에서 바이올린으로 우승했고, 그 후 바이올린 연주ㆍ녹음을 계속했지만 2년 전에는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앨범을 내놓아 음악 팬을 놀라게 했다. 네덜란드 태생의 얀센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세에 데뷔했다. 하지만 유난히 선이 굵고 남성적인 연주로 사랑받는다. 이들 모두의 매력적인 외모도 화제다.



안네 소피 무터, 정경화 등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의 매력에 빠졌던 음악 팬들에게 이들의 각축전은 또 다른 재미다. 신세대 연주자들은 각자의 특색있는 경력을 다져가며 ‘바이올리니스트의 여제’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