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almuny :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 <2회>

중앙일보 2010.10.14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실내는 좁고 공기는 탁했다. 나무침대 위엔 낡아서 부직포처럼 돼버린 모포가 깔려 있었다. 침대의 나뭇살은 썩어 있었다. 17세 소녀의 몸엔 군인들이 입다가 버린 광목 내의가 걸쳐져 있었다. 방금 전 한 무리의 일본군이 소녀의 육체를 거쳐갔다. 대야에서 시큼한 소독약 냄새가 올라왔다. 군인이 나가면 소녀는 그 약으로 몸을 닦았다. 닦으면 또 들어왔다. 소녀의 눈은 어딜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리포트] 진실을 찾아 나선 일본인, 이시카와
위안부 실상 안 일본교수, 귀국해 진상규명 세미나 강의를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은 이런 방을 수없이 많이 만들었다. 그곳에 우리의 딸이 있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위안부 후원시설)’에는 실제 크기의 위안소 모형이 있다. 2004년 2월 고베여대 이시카와 야스히로(53·사진·경제학) 교수는 그 방에서 길을 잃었다. ‘이 진실이 안겨준 충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나는 학자가 아닌가’.



교수는 학생들의 졸업여행에 동행했었다. 교수는 방문 전에 한국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한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저 호기심이었다. 그는 따로 시간을 내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가해자의 나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위안부의 고통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눔의 집에는 한때 소녀였던 이들이 할머니가 된 채 아직 살아 있었다.



교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3, 4학년을 대상으로 개설된 ‘경제 세미나’의 주제를 위안부로 바꿨다. 첫해 세미나의 이름은 ‘할머니로부터의 숙제(ハルモニからの宿題)’. ‘ハルモニ’는 우리말 ‘할머니’를 발음 그대로 일본어로 옮긴 것이다. 교수도 몰랐고, 학생도 모르는 주제였다. 주변의 거부감과 비난은 또 어떡할 것인가.



지난 5일 ‘나눔의 집’을 방문한 한 일본여성이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승식 기자]
교수는 전쟁 중 일본군과 위안부에 관한 기초자료를 찾고 또 찾았다. 처음엔 쭈뼛하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해졌다. 팩트(Fact·사실)는 강했다. 매주 2시간 세미나는 학생들의 지지 속에 5시간으로 확대됐다.



그해 9월 교수는 마지막 수업을 ‘한국 현지 세미나’로 결정했다. 모형 위안소 안에서 어떤 학생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진실은 무겁고 아팠다. 사과를 해야 할지, 인사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할머니들이었다. “젊은 당신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라며 어린 학생의 손을 잡았다. 교수와 학생들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도 참석했다. “우리들도 사죄한다. 일본 정부도 사죄하라”고 외쳤다. “이 진실 앞에서 도망쳐선 안 된다”고 했다.



6년이 흘렀다. 교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2005년엔 피해자 중 한 분인 이옥선 할머니를 초청해 증언 집회를 열었다. 올해 세미나에 참가한 세코 지에미(20·일본어과 3)는 “교과서에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인근 학교를 찾아가 알릴 계획”이라고 했다. 교수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해 세미나를 정리한 책도 발간했다. 교수와 학생은 자비를 털었다. 2008, 2009년엔 경제위기로 책을 내지 못했다. 교수님의 행동이 조국에 해를 끼치는 건 아닙니까.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조국 일본을 좋은 나라로 만들고 싶어요. 좋은 사회는 틀린 것, 잘못된 것을 인정할 줄 압니다. 그뿐입니다.”



매년 3000명의 일본인이 진실을 찾기 위해 ‘나눔의 집’을 찾는다. 그곳에는 2명의 일본인이 상주하며 봉사하고 있다. 한 달 정도 봉사하는 일본인도 여럿이다. 우리의 할머니는 국제사회에 위안부 이슈를 던진 최초의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의 용기에 존경을 담아 일본인들은 피해자들에게 ‘Halmuny’라고 부르고 있다.



고베=김효은 기자, 강인식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Halmuny가 아니라 ‘Halmeoni’ 표기가 맞다는 독자의 지적이 있었다. 2000년 바뀐 외국어 표기에 따르면 후자가 맞다. 본지는 관습적으로 쓰여진 이 말이 처음엔 ‘Halmuny’로 쓰였음에 주목했다. 정신대대책협의회가 국제문서를 만들 때도 처음엔 ‘Halmuny’라고 썼다.






Halmuny : 용기 있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 <1회>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