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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상생·상생 시대 열자

중앙일보 2010.10.13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유기체가 성숙할수록 개별요소의 투입보다 요소들을 섞어서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성장의 초기단계에는 요소 투입의 양을 늘려서 승부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요소 투입은 오히려 비만이나 성인병을 만든다. 이때쯤 되면 요소 투입보다는 혁신이 필요하다. 국가 성장단계에서는 이때가 요소 투입단계에서 혁신단계로 이행하는 시기다. 2007년 이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진입과 탈락, 그리고 재진입을 반복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이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기업과 국가경제는 이미 혁신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은 아직 요소 투입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혁신 경제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생철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세 가지 단계의 혼동에서 비롯되고 있다. ‘상생(上生)’단계, ‘상생(相生)’단계, ‘상생(常生)’단계가 그것이다. 우선 上生단계란 갑을관계의 대·중소기업 간 구조 속에서 대기업의 관용에 의존하는 수동적·시혜적 개념의 단계다. 1970년대 대·중소기업 간 거래관계는 임금의 이중구조를 배경으로 한 생산의 분업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거래의 형성요인은 저렴한 가격이고, ‘가격 흥정’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 힘이 약한 중소기업은 원가협상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지속된 상생협력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 간 수익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핵심은 바로 上生관계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혁신활동의 파트너로 활용하기보다 임금의 이중구조를 활용한 원가절감의 파트너로 묶어두고자 한다.



둘째 단계의 상생은 上生관계의 문제점을 직시하여 생산분업을 개발분업으로 발전시킨 相生형 관계다. 相生형 관계에서는 투입자원의 혁신성을 높여 혁신시너지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저가 생산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공급처나 연구개발의 파트너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상생정책이 거래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 중소기업을 연구개발의 핵심자로 육성하기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넘어 최고 수준의 상생관계는 기업 생태계의 진화를 지향하는 常生이 이루어지는 단계다. 생태계란 전체의 질서와 조직에 관한 사고이고, 생태계의 핵심은 흐름에 있다. 꽃 주변에 벌떼가 많이 몰릴수록 꽃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기업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꽃이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 꿀벌이다. 좋은 중소기업이 사라지지 않도록 살려내는 것은 기업 생태계에 좋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그러려면 대기업은 열린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기차가 있고, 서울역에 플랫폼이 생기면, 플랫폼 때문에 도시가 발전한다. 플랫폼이 열리면 기차는 힘차게 움직인다. 그래서 다시 다른 곳에 도시를 만들어 낸다. 중소기업은 기차와 같다. 만일 플랫폼이 닫혀 있으면 기차는 녹슬 수밖에 없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 창업 기업이 늘어나고 이들이 스몰자이언츠로,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진화할수록 기업 생태계는 강건해질 것이다.



이제 복지적 개념의 上生을 넘어, 열린 혁신의 相生을 만들고, 벌떼와 꽃이 꿀과 열매를 만드는 常生의 시대가 되면 중소기업이 대한민국 경제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중소기업학회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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