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김정은과 로빈슨 크루소

중앙일보 2010.10.13 00:26 종합 37면 지면보기
북한의 건국자 김일성 주석의 외모를 꼭 빼닮은 27세의 어린 김정은이 북한의 후계자로 조기 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핵심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김정일 위원장의 병세 악화에 따른 북한의 체제위기다. 북한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고립국가로 존재한다. 그래서 김정은의 처지는 고립무원 상태의 무인도에 갇혀 있는 로빈슨 크루소와 비슷한 상황이다.



우선 그가 이끌고 나가야 할 북한의 3대 왕조세습체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역행한다. 그래서 김씨 왕조체제는 세계 체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북한은 2006년과 2009년 1, 2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제1718호와 제1874호의 제재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천안함 폭침 사태로 인해 남북 경협마저 거의 중단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 통로는 거의 차단되었으며, 미사일을 비롯한 군수물자 등의 판매로 벌어들였던 외화벌이 또한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의 내부 통치자금 금고가 말라가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 체제를 지탱해 왔던 선군사상의 이념 또한 남한과 중국의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북한 인민들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충성심 또한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김정일 체제는 북한 인민들에 게 식량배급조차 제대로 제공해 주지 못할 만큼 먹을거리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이는 곧 북한 인민들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김정일 체제의 인민에 대한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가 해결해 주지 못한 식량위기를 인민들 스스로 해결토록 종용했고 그 결과로 형성된 것이 장마당이다. 김정일 체제 하에서의 장마당은 이중적 기능을 한다. 인민들이 자신들의 생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자급자족의 장임과 동시에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만의 장이다. 이것이 곧 작금의 김정일 체제가 맞고 있는 초미의 체제위기 상황이다.



북한은 지금 인민들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김일성 주석에 대한 향수가 깊어지고 있다. 김정일이 자신에 대한 체제불만 세력을 다독이면서 이를 새로운 체제 지지세력으로 극적 전환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날로 늘어만 가는 김일성 향수에 빠져 드는 인민들의 정서를 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체제 유지의 긴급조치로 김일성과 꼭 닮은 어린 김정은 후계카드를 조기에 뽑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정일이 지난 8월 자신의 불편한 몸을 이끌고 중국 지린성에 있는 김일성이 다녔던 중학교와 혁명성지를 방문한 것이나, 자신의 여동생 김경희 경공업부장을 정치국 위원으로 임명한 것 또한 김일성 향수에 젖어 있는 인민들을 껴안기 위한 포석이다. 김 위원장이 만경대 혈통, 백두 혈통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조기 등장시킨 두 번째 배경은 김정은이란 후계카드를 내세워 미국의 관심을 끌어들인 다음, 핵 협상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에서다. 그 근거로는 북한의 대미외교와 핵협상을 주도해온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을 부총리에 임명해 대미외교라인을 격상시킨 점, 후계자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했다는 사실과 그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올랐다는 뉴스를 북한 인민들이 가장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새벽 1시, 4시에 각각 타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시각은 워싱턴의 낮 12시와 오후 3시다. 북한은 의도적으로 미국의 낮 시간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65주년 기념식을 치르면서 미국의 CNN을 비롯한 약 80명의 서방취재단을 초청하고, 특히 CNN을 통해 군 열병식을 생중계한 것 역시 미국과의 핵협상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이런 자신의 메시지를 외면할 경우 어린 선군 후계자 김정은을 내세워 3차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다. 그리고 소형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실전 배치해 한반도 주변을 다시금 소용돌이 국면으로 몰고 갈 것이다. 김정일의 이런 도박은 위험하다. 그는 김정은 후계카드를 통해 실패한 선군정치(先軍政治)보다 핵을 포기하는 선경정치(先經政治)를 전면에 내세워야 체제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할 것인가. 한반도의 불투명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평화포럼 대표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