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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병마 가난도 누르지 못한다, 건칠 마지막 장인의 집념

중앙일보 2010.10.13 00:16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창호씨가 1984년 국전 특선작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을 포함해 서너 점만 화마를 피했다.
전통 공예 가운데 건칠(乾漆)이 있다. 삼베에 옻칠을 발라 조형물을 만드는 칠기 공예다. 옻을 섞은 삼베를 반복적으로 발라 일정한 두께를 만들어내는 작업이기에 어느 옻칠 공예보다 공정이 길다. 낙랑시대의 건칠 유물이 발견될 정도로 그 역사가 긴, 옻칠의 뿌리이기도 하다. 고 강창규(1906~1977) 선생은 한·중·일 3국 중 우리나라에서만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던 건칠을 되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건칠반(乾漆盤·등록문화재 421호)은 근대 공예의 걸작으로 꼽힌다.


삼베 쓰는 까다로운 옻칠 공예
정창호씨 암과 싸우며 맥 이어

정창호(62)씨는 1960년대에 강창규에게 사사한 뒤 40여 년간 그 맥을 이어왔다. 내년엔 개인전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화마에 병마가 잇달아 덮쳤다. 올 4월 경기도 파주의 비닐하우스 작업장에 불이 났다. 40여 년간 만든 완성작과 미완성작, 옻칠 재료, 자동차까지 몽땅 불탔다. 게다가 7월 말 폐암 4기 선고를 받았다. 국립암센터에선 5~6개월간 항암치료를 하면 5~6년은 버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살아갈 의욕을 잃은 그는 한동안 병원 치료를 거부했다. 보다 못한 이칠용(64) 공예예술가협회장이 “건칠 하는 사람이 자네 하나뿐인데, 누구에게라도 전수하고 떠나라”며 달래고 얼렀다. 모금 운동을 벌여 최근 1차분 300만원을 전달했다.



정씨는 1968년 동아국제미술전 신인상을 받은 이래 숱한 미전·국전·공예전에서 상을 받았다. 정씨는 “출품해서 실패한 적이 없었다. 나는 상품보다는 작품을 해야겠다며 시건방지게 예술가의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건칠이 차도구 등 생활용구로도 널리 쓰인다. 가볍고 보온성이 있으며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등의 효능 때문이다. 정씨도 시도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작은 작품 하나 만드는 데에도 2~3개월이 걸리는 까다로운 공정에 고가의 재료비가 문제였다. 밥그릇 하나에 30만원을 주고 살 소비자는 없었던 것이다. 몇 있던 제자들도 생활이 어려워 떠났다. 그러나 정씨는 상금으로 생계를 이으며 20년째 곰팡내 나는 비닐하우스 집에 살면서도 홀로 건칠을 고수했다.



“건칠이 저한테 잘 맞았어요. 지금도 디자인이 머릿속에서 막 떠다닙니다. 지금도 누가 작품을 하라고 하면 벌떡 일어날 것 같아요.”



지옥 같은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2주째, 물만 마셔도 토하는 고통 속에 20㎏이 빠졌다. 그래도 다시 살아갈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칠용 회장은 “정창호씨처럼 전통의 맥을 어렵게 이어가는 장인들이 이토록 가난하게 사는 것이 우리 공예계의 현주소”라며 “단청·매듭 등 일부 인기 있는 종목에만 국한된 우리 무형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고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글·사진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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