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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에 신경 쓰다 시험 망친 적 있다면 …

중앙일보 2010.10.13 00:08 Week& 11면 지면보기
“고3 첫 수능 때, 앞에 앉은 수험생이 다리를 떠는 게 신경 쓰였어요. 지나치려 했는데 언어듣기 평가하는 데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거 있지요?” 창영씨는 평소 실력보다 훨씬 못한 성적이 나와 재수를 결심하게 됐다. 재수를 하면서도 평가원 모의고사 같이 중요한 시험 때만 되면 옆 좌석에 놓인 파란색 사물함이나 벽 모서리가 신경에 거슬려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다. 민영이는 수능 전날 긴장을 풀기 위해 취침 전 MP3로 들은 가요가 머릿속에서 맴돌아 도저히 시험을 볼 수 없어 울면서 포기했다.


공부클리닉 정찬호 마음누리클리닉 원장

수능 당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1년, 아니 12년 농사를 망치는 수험생들을 자주 본다. 쓰고 있는 안경의 안경테가 신경이 쓰이고, 의자가 삐걱거려 문제를 풀 수 없고, 감독교사가 나만 주시하는 것 같고, 이들은 수능 당일 “재수 옴 붙었다”라고만 생각하고 또 한번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모들은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댄다”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이런 현상은 시험 불안과는 또 다른 종류의 적군이다. 뭔가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내내 머릿속에서 메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수능이라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취약한 심리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강박현상의 일종이다.



이런 학생들은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소위 ‘예민한 순둥이’ 학생들이다.



조금은 소심하기도 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친구들의 의견을 그냥 따르는 양보심과 배려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꾹 참고 지내는 것이 버릇이 돼 자기 감정이나 의견을 분출하지 못하고 쌓아둔다. 이것이 원인이 돼 심인성질환(심리적 문제가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민영이의 경우는 스트레스만 받으면 배탈이 나 수험생활 내내 병원 신세를 졌다. 매번 ‘과민성 대장증세’라는 말만 듣고 거의 매일 약에 의지해야 했다.



이런 스트레스성 강박이나 심인성질환에는 인지행동적 접근이 효과적이다. 즉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때 내 생각과 행동이 어떤지 함께 짚어보며, 그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가를 파헤치는 작업이다. 명상, 점진적 근이완법, 안구운동법 등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하나씩 가지는 것도 좋다. 의학적 접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유사한 경험이 있는 ‘예민한 순둥이’ 학생들은 비록 수능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당일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 미리 진단하고 대처법을 찾는 것이 수능에서 제 실력을 낼 수 있는 보증수표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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