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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자인 프로젝트 ⑧ 동덕여대 패션디자인과 학생들 ‘한글의 재구성’

중앙일보 2010.10.13 00:01 경제 22면 지면보기
10월이면 늘 나오는 화두 하나. 한글에 대한 얘기다. 한글 간판이 사라진다거나, 뜻 모를 외국어가 남용된다는 등의 자성의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도 늘 나오는 레퍼토리다. 그래서 이달 주제를 한글로 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옷으로 보여주자는 것. 말이나 글이 아니라 한글을 미적인 무늬로 활용해 보자는 시도였다.



동덕여대 패션디자인과 4학년 학생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시선으로 그들은 7벌의 한글 옷을 선보였다. 디자인은 크게 두 갈래였다. 글자 하나를 포인트로 잡아 형태로 풀거나, 글자를 반복하고 재배열하면서 새로운 무늬로 만들어냈다. 아이템도 트레이닝복부터 이브닝드레스까지 다양했다. 풋풋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한글의 재탄생이었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촬영협찬=더슈(구두) 모델=임은경(피플에이전시)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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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에 참여한 미래 디자이너들

“카피는 싫어 … 기존 디자인 쳐다도 안 봤죠”




이번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4학년이다. 졸업이 몇 달 안 남은 데다 취업·유학 준비로 정신이 없을 시기다. “솔직히 ‘스펙’에 도움이 되겠다는 꼼수도 조금 있었죠. 하지만 신문에 자기 작품 나오기가 쉬운가요? 평생 추억이 될 텐데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이원미(22)씨가 프로젝트에 ‘손 든 이유’를 밝혔다. 졸업작품전도 이미 4개월 전 끝난 마당이라 이번 작품은 그들의 진짜 졸업기념작이 됐다.



“카피는 만들지 말자”



한글은 너무 익숙해서 문제였다. 특히 기성 디자이너가 한글 디자인으로 유명한 것도 부담을 더했다. 손정일(29)씨는 “그분 작품들이 너무 잘 알려졌기 때문에 더 창의적인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세정(22)씨도 “아예 시중에 나온 한글 디자인은 찾아보지도 않았다”며 공감했다. 둘 다 ‘카피’가 되면 안 되겠다 생각이 확고했다.



학생들의 고민은 또 있었다. 한글은 우리말이라 되레 촌스럽고 식상하게 보일 수 있는 약점이었다. 노애다(23)씨는 “외국 브랜드의 로고를 좋아하는 이들도 한글 프린트는 어색하게 여긴다”며 “비밀스러움이 없으면서 시각적 재미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예비 디자이너들은 나름의 결론을 냈다. 글자가 그대로 들어가는 직설적 디자인이나 서예 같은 예스러운 느낌은 피하자는 것. 큰 틀을 잡으니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원망스러웠던 추석 연휴



제작 과정 중 한 가지 걸림돌은 추석 연휴였다. 막상 디자인을 끝내고 작업에 들어가려는데 동대문 상가들이 문을 닫았다. 원단을 사고 프린트를 맡길 곳이 적어 막막했다. 박수진(22)씨는 프린트가 나오는 데 2주나 걸린다는 소리에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옷감을 약속한 날짜에 받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느라 추석 연휴 내내 마음을 졸였다. 한나라(22)씨도 공장에 못 맡기게 된 작업들을 연휴 내내 집에서 대신 했다. “재봉틀과 씨름하고 있다 보니 가족·친척들이 어느새 저를 도와주고 있더라고요. 덕분에 제겐 잊지 못할 특별한 추석이 됐어요.”



한글의 패턴화가 살길



‘한글과 패션의 만남’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한글을 패턴화시켜야 한다는 것. 초·중·종성의 조합을 고수하기보다 자모음을 하나하나씩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정민경(27)씨는 “한눈에 봐도 뜻을 알 수 있는 글자는 오히려 한글의 한계가 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글의 자·모음 하나하나가 충분히 아름다운 무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슬기(23)씨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글이 예쁘다는 걸 새삼 느꼈다”며 “한글을 패턴화하는 작업을 좀 더 발전시켜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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