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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콩글리시

중앙일보 2010.10.07 20:54 종합 35면 지면보기
영어 문제 한번 풀어봅시다. ①Fried Enema ②The Jew’s Ear Juice ③ The palace explodes the shrimp ball. 무슨 뜻인지 감이 좀 잡히시는지? enema가 관장(灌腸), Jew는 유대인이란 힌트를 들어도 아마 알쏭달쏭할 게다. 정답은 ①소시지 튀김 ②버섯 음료 ③매콤한 새우 요리. 실제로 중국 식당 메뉴에 버젓이 올라 있는 기상천외한 ‘칭글리시’(중국식 영어) 표현들이다. 올봄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소탕 작전까지 펼쳤지만 여전히 인터넷엔 ‘튀긴 관장’처럼 포복절도할 칭글리시가 그득하다.



하긴 우리가 남 얘기할 처지는 아니다. ‘knife-cut noodles(칼국수)’ ‘six times(육회·肉膾)’ 등등 칭글리시 뺨치는 ‘콩글리시’ 표현이 셀 수 없다. bibimbap(비빔밥)·bulgogi(불고기) 식으로 영문 표기를 통일하자는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몇 달 전 농림수산식품부가 턱 하니 막걸리를 ‘Drunken Rice(술 취한 쌀)’라 부르자고 나선 걸 보면 말이다. “외국인이 알기 쉽게”가 선정 이유라는데 정작 소식을 접한 주한 외국인들은 “술이 아니라 이상한 쌀이 연상된다”며 기막혀 했단 후문이다.



이백여 년 전 원어민 앞에서 어설프게 문자 쓰다 망신살 뻗친 연암 박지원 얘길 교훈으로 삼을 일이다. 중국 저잣거리 곳곳에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간판이 걸린 걸 보고 주인장의 심지가 밝고 깨끗하다는 뜻으로 지레 넘겨짚은 연암. 글씨 자랑도 할 겸 한 전당포 가게에서 그 네 글자를 선물로 써주자 주인 태도가 싸늘하게 변했단다. 원래 기상새설은 면발이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뜻. 국숫집 간판을 전당포에 잘못 써줬다가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거다.(박지원, 『열하일기』)



콩글리시는 비단 음식 메뉴에만 그치지 않는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는 ‘한국 방문의 해’. 그런데 주관 위원회는 물론 올해 대표 축제로 선정된 부산세계불꽃축제(21~23일) 홈페이지에도 틀린 영어 표현이 수두룩하다는 지적이다. 자칫하다간 불러모은 손님들 앞에서 이미지만 구길 판이다. 중국처럼 ‘콩글리시와의 전쟁’이라도 한바탕 벌여야 할지 모르겠다. 한글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주제에 영어까지 엉망진창이라니 세종대왕 뵐 낯이 없다.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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