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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이슈] 291만 명 아줌마들 차별하는 국민연금

중앙일보 2010.10.07 03:00 종합 22면 지면보기
#전모(31·여)씨는 2003년 초 4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해 말 결혼했다. 이듬해 6월 신장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뒤 지난해 11월 투석을 시작했다. 전씨는 국민연금공단에 연금을 신청했으나 거절됐다. 연금공단은 전씨가 결혼한 뒤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가 돼 연금 대상에서 빠진 점(적용제외자)을 내세웠다. 전씨는 48개월치 보험료를 냈지만 혜택을 못 봤다.



#노모(32·여)씨는 2006년 6월 실직했다. 그전까지 27개월치 국민연금 보험료를 냈고 실직 후에는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납부예외자가 됐다. 노씨도 신장에 이상이 생겨 2008년 신장장애(2급) 판정을 받아 그해 6월부터 매달 33만원가량의 장애연금을 받고 있다.



사정이 비슷한데도 두 사람 사이에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전씨는 결혼한, 소득 없는 전업주부이고, 노씨는 미혼이라는 점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국민연금이 전업주부와 자영업을 하는 여성을 차별하고, 결혼을 막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6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한나라당 원희목(비례대표)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91만 명의 전업주부와 자영업 여성들이 이런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은 무소득 전업주부를 가입 자격이 없는 적용제외자로 분류한다. 이 규정 때문에 전업주부는 장애연금을 받지 못한다. 본인이 사망해도 남편이나 자식이 받을 유족연금(가입기간 10년 미만)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9년 직장생활을 한 여성 김씨(월 보험료 22만8000원 납부)의 경우(표 참조)를 보자. 김씨가 결혼하지 않고 실직한 기간에 장애가 생기면 평생 장애연금을, 사망한다면 부모가 유족연금을 받는다. 김씨가 일자리를 구한 뒤 밀린 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할 수도 있다. 보험료를 낸 만큼 노후에 받을 연금이 올라간다. 그러나 김씨가 소득 없는 전업주부라면 아무런 혜택을 못 받는다. 수퍼마켓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 농업인 부부 중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부 자영업자는 대부분 남편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국민연금도 남편이 든다. 아내는 무소득 배우자로 취급된다.



물론 김씨가 남자라 해도 같은 규정이 적용되지만 무소득 배우자의 경우 여성이 88%로 압도적으로 많다. 2009년 4월 현재 소득이 없는 배우자 중 연금 가입 경력(보험료 납부)이 있는 여성은 291만 명이다. 이 중 보험료 납부 기간이 10년 미만인 사람은 장애연금·유족연금 혜택을 못 본다. 보험료를 10년 이상 납부한 여성 8만3000명은 국민연금 수령 조건(10년 납부)을 갖추고 있는데도 장애연금 혜택을 못 본다.



원희목 의원은 “적용제외자나 납부예외자나 국민 입장에서는 다를 바 없다고 본다”며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부했다면 현재 상태(무소득 배우자)에 관계 없이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문화가 이번 조항의 바탕이 됐다. 국민연금에 대한 반발을 줄이기 위해 적용제외자 제도를 도입해 예외 폭을 넓게 잡았으나 제도가 성숙하면서 문제점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배금주 연금정책과장은 “결혼한 여자한테 장애가 생기면 남편이, 미혼 여성은 국민연금이 책임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며 “시대 변화를 고려해 개선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적용제외자와 납부예외자=적용제외자는 국민연금 강제 가입 대상이 아닌 사람을 말한다. 전업주부, 18~26세 학생, 기초생활수급자 등 1332만 명이다. 실직·사업중단 등의 이유로 소득이 없어져 보험료 납부를 유예한 사람이 납부예외자다. 지역가입자의 59%인 512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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