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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둘 다 초간본 맞나

중앙일보 2010.10.07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문화재청‘중앙본’‘한성본’ 모두 문화재 등록 예고 … “표기법·판형·지질 등 달라 동시에 출간된 시집은 아닐 것” 국문학·서지학 전문가들 지적

김소월(1902~1934·사진)의 대표작 ‘진달래꽃’의 첫 구절이다. 한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널리 애송되는 시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때마침 문화재청이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간본을 지난달 13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근대 출판물 중 문화재가 되는 첫 사례다. 문학적·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뜻이다. 『진달래꽃』은 1925년 12월 25일 경성 매문사에서 처음 펴냈다. 김소월이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이기도 하다.



그런 『진달래꽃』 초간본을 둘러싸고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이 등록 예고한 초간본은 ‘한성도서주식회사’ 총판본(이하 ‘한성본’)과 ‘중앙서림’ 총판본(이하 ‘중앙본’) 두 종.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배민성 사무관은 “여러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결국 객관적인 판권 정보(1925년)를 기준으로 판단해 두 종을 동시에 등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문학·서지학 전문가들은 제목의 표기법, 판형과 지질 등이 다른 두 종류의 책을 동시에 출간된 초간본이라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가문화재라는 비중을 감안할 때 보다 치밀한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무엇이 다른가=두 판본의 본문 내용은 몇몇 오류를 빼고 일치한다. 하지만 겉표지와 속표지, 판형과 지질, 제목의 표기 등이 다르다. 중앙본은 표지에 그림 없이 ‘진달내’이란 제목과 시집의 발간 연도(1925)가 적혀있다. 한성본의 표지에는 꽃·수석 등의 판화그림이 찍혀 있다. 두 시집 모두 본문의 ‘꽃’ 표기법은 ‘’이다.



그런데 한성본은 제목·판권에 ‘진달내꽃’으로 적혀있다. 한성본에 있는 조판상의 오류 16곳이 중앙본에서는 바로잡혀 있다. 중앙본은 모조지로, 한성본은 갱지로 제작됐다. 문제는 판권이다. 두 책의 판권 정보는 총판과 제목만 빼곤 동일하다.



문화재 조사를 맡은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는 “일제시대 검열이 철저했기 때문에 재판을 초판으로 표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본다”며 “서정주의 『화사집』이 특제판과 보급판 2종으로 제작된 것을 볼 때 『진달래꽃』도 이본이 나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함께 조사한 세종대 김종욱 교수도 “한성본이 재판이라면 같은 지형을 썼는데 나중에 제작한 판에서 오류가 더 많아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1920년대 문헌을 전수 조사하지 않는 한 당시에 ‘꽃’이란 표기가 쓰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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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오류 아니다”=중앙본 소장자인 재야 서지학자 윤길수씨는 “본문과 판권 등에 있는 표기인 ‘’을 겉표지에만 ‘꽃’으로 표기한 건 단순 오류 이상의 것이라 판단된다”고 반박했다. 윤씨는 40년간 서적 2만여 권을 모은 수집가다. 윤씨가 든 근거는 이렇다. ▶‘꽃’이라는 표기가 통용된 것은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발효된 뒤의 일이며 ▶소월이 1922년 ‘개벽’지에 작품을 발표했을 때도 ‘진달내’이라 표기했고 ▶ 『진달내』이 출간되기 3개월 전에 매문사에서 간행된 김억의 시집 『봄이 노래』에 실린 ‘근간(近刊) 예고’에도 ‘진달내’이라 적혔으며 ▶『봄의 노래』가 고급 모조지이므로 같은 출판사에서 발행한 소월의 시집 역시 모조지로 만드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모조지로 만든 132쪽짜리 『봄의 노래』 정가는 60전. 234쪽짜리 『진달내』은 한성본(갱지)과 중앙본(모조지) 모두 정가 1원20전이다. 윤씨는 “동시에 출간한 책을 질이 다른 종이를 사용해 만들었다면 같은 값을 받는다는 건 모순”이라며 “1920년대에는 모조지를 많이 사용했으나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나서느라 물자가 부족해진 30년대 후반경부터 갱지의 사용이 증가했고 해방 후에는 소위 ‘똥지’라는 저급 종이가 많이 쓰였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출판상황=현대시박물관장인 경희대 국문과 김재홍 교수는 “판권은 오늘날에나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지 당시엔 그다지 예민한 게 아니었다”며 “재판, 삼판으로 갈수록 오류가 더 많아지는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고 말했다. 1926년 출간된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는 ‘기루어’(가여워)란 사전에도 없는 단어가 나오는데, 후대에 나온 판본에서 편집자가 임의로 ‘그리워’로 바꾼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 역시 “판을 거듭할수록 오류가 줄어드는 건 편집기술이 발달한 근래의 일”이라고 말했다.



서지학자인 김영복씨는 “70~80년대까지 조판한 활자판에 종이를 눌러 ‘지형(종이틀)’을 뜬 뒤 지형에 납물을 부어 연판을 만들고, 연판 상태에서 ‘끼워넣기’ 기법으로 오탈자를 수정한 뒤 인쇄했다”며 “후에 지형을 인수받은 출판사가 오류가 있는지 모르고 인쇄해 초판에는 바로잡혀있는 오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또 “연판을 수정하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오류를 알고도 잡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며 “한성본은 초간본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는 “쌍기역에 ‘ㅊ’ 받침까지 쓰였다면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발효 이후라 보면 틀림없다”며 “일제시대 검열이란 게 서정시집에까지 미친 것이 아니므로 한성본은 표지만 바꿔서 찍은 재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교수는 “두 종류 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는 “중앙본이 유일한 초간본이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다”며 “근대 출판물의 문화재 지정 작업에는 문학적인 접근을 주로 하는 국문학자 외에도 실제 고서를 다뤄본 경험이 많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겠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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