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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통일 이후의 통일

중앙일보 2010.10.06 19:44 종합 38면 지면보기
미처 예상 못한 시점에 8·15 해방이 찾아오자 당시 어떤 이는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고 했고, 다른 이는 “아닌 밤중에 찰시루떡 받는 격으로 해방을 맞이했다”고 고백했다. 남북통일도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스물 여섯 새파란 나이의 뚱뚱한 청년이 김정일과 그의 늙은 충신들 사이에 앉아서 손뼉 세워 바쁘게 박수치는 남들과 달리 ‘가로로 느긋하게 박수치기’ 초식(招式)까지 선보이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북한 정세는 자욱한 안개 속으로 접어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결과가 예상보다 이른 통일이 될지, 분단 고착화가 한층 단단해질지, 다른 미증유(未曾有)의 비극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을 지난해에 읽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통일 이후의 한국’이 실감나지는 않았었다. 2011년 갑작스럽게 통일이 이루어지고 5년 후인 2016년이 소설의 무대다.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면서 120만 인민군은 해체되고, 그 일부는 남한에 내려와 조직폭력배가 된다. 북한의 교사들도 거의 직장을 잃는다. 북한 고위당원의 딸이자 화가였던 여성은 남한에서 접대부가 된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 오후 잠실야구장 선수 탈의실에서 목매 자살한 청소부 할머니는 북한에서 잘나가던 아나운서였다. 북한 내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하는 남한 사람들의 소송이 줄을 잇는다….



이미 현실세계에서도 거대한 변화의 서막을 보는 듯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 사는 남매 4명이 지난해 “남한에 사는 친아버지의 상속재산 일부를 우리에게 달라”며 소송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전달받아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친자식이 틀림없었다. 아마 통일이 확실해지는 시점엔 비슷한 소송이 봇물 터지듯 할 것이다. 그래서 법무부도 최근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 및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가칭) 초안을 마련하지 않았겠는가.



통일의 ‘쓰나미’는 단순히 가족관계나 재산권에만 밀어닥치는 게 아니다. 전방위적이다. 우리 각자가 ‘마음의 대비’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의 3대 세습이 어느 길로 나아가든, 이제는 통일을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게 됐다. 내일 한림대에서 열리는 ‘통일 후의 통일을 생각한다’는 주제의 학술대회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흥미롭다. 소설 『국가의 사생활』에서도 언급된 통일 후의 북한 교사들 문제를 보자. 이종재 서울대 명예교수는 미리 작성한 발표문에서 ‘공산주의 이념 교육과 개인숭배사상 주입을 위한 교과를 폐지할 경우 (북한)인민학교 교원의 10%, 고등중학교 교원의 12%, 고등교육기관 교원의 20% 내외의 교원 교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상당 부분 이질화된 언어 문제도 크다. 임홍빈 서울대 명예교수는 “맞춤법을 비롯한 남·북 어문규정을 절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각자의 규정을 그대로 쓰든가, 굳이 한쪽을 택하려면 인구가 많은 남쪽의 것으로 통일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낫다”고 진단한다. 북한 내 토지·기업에 대해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시적으로 북한 지역 재산에 대한 재(再)국유화 조치를 단행한 뒤 사유화 대상을 가려내 단계적으로 사유재산제를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남한 사람의 북한 토지 소유권 회복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되, 원소유자가 확실한 경우엔 예외적으로 국가가 보상하자고 김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교육·언어·재산 등 어느 것 하나 녹록한 문제가 없지만, 한편으로 뜻하지 않은 무력충돌이나 외세의 개입도 염두에 두고 예방·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은 그만큼 복합적이고 대규모의 사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 민족이 감당해야 할 짐이자 축복인 것을. 해방은 준비 없이 맞았다지만 통일마저 그럴 수는 없다. 넋 놓고 있다 도둑인지 시루떡인지 분간조차 못해선 안 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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