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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한국인 입양아들 ‘뿌리’ 찾아주는 유대인

중앙일보 2010.10.06 00:28 종합 34면 지면보기
제리 워츠키(왼쪽)와 박수연 회장 부부가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 있는 피터 노튼 심포니 스페이스 극장에서 열린 국악 공연 후 포즈를 취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95번가 피터 노튼 심포니 스페이스 극장. 23명이 펼친 풍물놀이 ‘우도 판굿’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마지막 순서로 나선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자란 한국인 입양아였다. 지난 여름 전남의 국립남도국악원에서 2주 동안 배운 춤과 연주 솜씨를 뽐냈다. 양부모의 ‘원더풀’ 환호에 아이들의 얼굴에선 한국인이란 뿌리를 찾은 기쁨이 묻어났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탈출해 미서 자수성가한 제리 워츠키
한국인 부인과 함께 국악·한글 교육 … 한국 탁구팀 후원도

올해로 16회째 ‘국악대잔치’ 행사를 이끌어온 건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전통예술협회 박수연(57) 회장 부부다. 박 회장은 80년 미국으로 건너온 뒤 국악에 심취해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살풀이춤과 승무를 이수했다. 그 뒤 국악 보급을 시작했다. 특히 한국인 이민 2~3세와 입양아에게 국악과 한글을 가르쳤다. 그의 활동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온 건 남편 제리 워츠키(80)씨다.



1930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워츠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혔다. 부모가 가스실에서 희생되는 걸 목격해야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형과 함께 분뇨통에 숨어 구사일생으로 수용소를 탈출했다. 나치 패망 뒤 보육원을 전전한 그는 49년 혈혈단신 미국 뉴욕행 배를 탔다. 직물공장 노동자로 밑바닥부터 시작해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갔다. 타고난 근면함과 숫자 감각으로 그는 부동산 투자로 성공했다. 그의 왼쪽 팔목엔 아직도 ‘B-9096’이란 문신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우슈비츠가 남긴 상처다.



그는 70년대 중반 사업을 함께 한 한국 건설회사 사장과 가까워지면서 한국을 알게 됐다. 형이 있는 호주 멜버른에서 접한 80년 5·18 광주 항쟁 소식은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게 했다. 나치의 만행을 겪은 그에게 광주 희생자는 절절한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게 했다. 이날은 마침 그의 50회 생일이기도 했다.



맨해튼으로 돌아온 뒤로도 한식당을 즐겨 찾던 그는 32가 코리아타운의 한식당 주인이었던 박 회장을 만났다. 한식 매니어가 된 워츠키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박 회장에게 끌렸다. 워츠키도 뿌리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유대 문화를 잊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집단농장 키부츠를 일부러 찾기도 했다. 88년 박 회장과 결혼한 뒤 그는 부인이 국악 보급 활동을 하는 데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2006년부턴 한국인 입양아를 국립남도국악원에 보내는 ‘캠프 프렌드십’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그는 한국 탁구팀 후원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보육원에 있을 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탁구에 빠진 뒤 탁구광이 됐다. 한국 선수 중에선 유남규와 김택수의 팬이다. 98년엔 희귀병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된 한국 소녀를 뉴욕으로 데려가 수술을 받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워츠키는 “전생에 나는 한국인이었을 것”이라며 “국악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16일 목포에서 열리는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 문화훈장을 받을 예정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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