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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런던 거리서 만나 봤어요, 옷 좀 입는 언니들

중앙일보 2010.10.06 00:23 경제 22면 지면보기
영국 런던은 스트리트 패션의 고향이다. 펑크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빈티지 스타일링의 천재라 불리는 알렉사 청도 이 도시가 만든 스타들이다. 여기 젊은이들은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세컨드핸드숍(중고용품점)이나 SPA 브랜드에 드나들면서도, 이를 옹색하지 않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킨다. 그러니 단 하루만 머물러도 잡지 열 권 읽는 것보다 배울 점이 많다. 이 도시엔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라는 직업까지 있다. “당신의 스타일이 맘에 듭니다”란 한마디에, 창조적인 ‘거리의 패셔니스타’들이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다만 사생활을 중시해 신분이 드러나는 건 꺼린다.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의 신상정보는 생략하고 오직 스타일만 카메라에 담은 이유다. 9월의 어느 멋진 날, 런던의 청춘들이 모여드는 코벤트가든에서 만난 멋쟁이들을 소개한다. 런던의 한 패션스쿨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이 거리에 2년째 살고 있는 포토그래퍼가 ‘진짜 런더너’를 감별해줬다.



런던=이진주 기자 사진=홍승모(프리랜서)



원피스부터 ‘제깅스’까지 너도나도 데님



지금 런던은 데님 천하다. 몸매를 드러내는 미니 원피스에 헐렁한 데님셔츠나 재킷을 걸치는 건 기본이고, 다양한 길이와 모양의 청바지들이 거리를 점령했다. 전통적인 데님 생지부터 복고풍 ‘돌청’(염색과정에 돌가루를 넣어 거친 느낌이 나도록 물을 뺀 스톤워싱 데님)까지 다양한 워싱이 공존했다. 사진엔 미처 담지 못했지만 데님 소재 레깅스인 ‘제깅스(진+레깅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1 빙고! 영국 출신 할리우드 스타 키라 나이틀리가 코벤트가든에 떴다! 검은색 마이크로 미니 스커트에 소매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긴팔 셔츠를 입고, 그 위에 빈티지한 느낌을 주는 티셔츠와 물이 많이 빠진 데님 재킷을 겹쳐 입었다. 이번 시즌 트렌드인 프린지(술)가 달린 블루톤 스카프가 스타일링 포인트. 레깅스보다 살이 비치는 검은 스타킹에는 검은색 워커를 신어 밀리터리 트렌드도 반영했다.



2 무도회에 참석한 신데렐라처럼 부풀린 올림머리를 하고 지나가던 그녀, 눈이 번쩍 뜨였다. 복고풍 돌청 원피스에 짙은 푸른색 스웨이드 구두를 신어 신선해 뵌다. 빨간색 참(장식)이 달린 실버 팔찌로 포인트를 준 센스도 칭찬받을 만하다. 퍼프를 넣어 부풀린 원피스 소매는 발맹이 만들어낸 ‘파워숄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데 신데렐라야, 검은색 스타킹은 왜 신은 거니?



3 미셸 오바마 여사 못잖게 자신만만한 패션세계를 선보였다. 보트넥 스판 소재 셔츠를 입어 가슴과 허리를 강조하고, 몸에 붙는 7부 청바지 밑에는 노란색 러버밴드(고무 소재 발찌)를 둘러 검은 피부색에 포인트를 줬다. 허리가 쫀쫀한 블루종 형태의 가죽 점퍼는 탄력 있는 몸매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군번줄에 매단 것 같은 전자시계 목걸이는 밀리터리 트렌드를 살려주는 소품. 당당한 태도와 웃음까지 10점 만점에 10점이다.



4 까무잡잡한 피부색이 매력적인 이 아가씨는 빈티지, 밀리터리, 데님, 에스닉의 네 가지 유행 요소를 믹스했다. 빈티지 열풍을 타고 순항 중인 잔꽃무늬 마이크로 미니 스커트에 밀리터리 카키 셔츠를 입고 넉넉한 사이즈의 물 빠진 데님 셔츠를 덧입었다. 색상의 어울림까진 좋았는데 안에 입은 셔츠가 헐렁하고 길어 밋밋한 느낌. 에스닉한 목걸이와 팔찌를 매치한 건 ‘투 머치(너무 과하다)’였다. 앞코가 둥근 부츠보다는 엣지 있는 부츠로 포인트를 줬으면 좋았겠다. 카키 셔츠든 부츠든 적어도 어느 한 군데엔 힘이 실렸어야 했다.



런던을 활보하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허리 높이를 한껏 올린 ‘하이 웨이스트’ 차림이었다. 포토그래퍼에 따르면 하이 웨이스트는 레깅스나 호피무늬와 마찬가지로 런던 남자들도 딱 질색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나 다리가 드라마틱하게 길어 보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유행하고 있단다. 트렌드란 무섭다. 지난 겨울엔 못생긴 어그부츠도 귀여워 보이게 만들더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높이고 다니니 나중엔 별로 이상해 보이지도 않더라.



5 어머, 언니. 다리가 긴 거유, 올려 입은 거유? 연어색 원피스에 검은색 가죽 라이더 재킷을 매치해 멋스럽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든 손 모양이며, 자연스러운 포즈가 아무래도 스트리트 패션에 많이 찍혀본 솜씨. 한데 액세서리가 많이 아쉽다. 크림색 가방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새하얀 운동화와 보석 목걸이는 좀 난데없달까. 연분홍 운동화 끈은 나름대로 원피스와 ‘깔맞춤’(색깔을 어울리게 맞춘 것)을 시도한 것 같은데, 2% 부족하다.



6 자잘한 꽃무늬 원피스에 비둘기색 면 소재 재킷을 입어 얼핏 ‘촌색시’ 같다. 하나 알고 보면 ‘좀 노는 언니’란 증거가 곳곳에 숨어 있다. 여분의 허리띠가 몸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게 안타깝긴 해도, 핫 트렌드인 하이 웨이스트 효과는 충분하다. 지난해 유행하던 두꺼운 ‘챔피언 벨트’가 아니라 가느다란 벨트라는 점도 포인트. 왼쪽 팔목에 실 팔찌와 색색의 종이로 만든 클럽 출입증, 빈티지 롤렉스 느낌의 메탈 시계를 섞어 찬 솜씨가 범상찮다 싶었는데, 오른쪽 둘째 손가락의 ‘피스’(비둘기 발가락 모양 심벌) 반지를 보고 알았다. 클럽 좀 다녀본 ‘내공녀’란 사실을. 언니, 집에 가서 재킷만 갈아 입고 나오자.



변덕스러운 날씨 탓 시폰가죽·모피는 사계절용



요즘엔 우리나라도 만만찮지만, 날씨의 변덕이 심한 런던에선 옷차림으론 결코 계절을 알 수 없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이 공존하는 게 런던 스타일. 시폰 원피스부터 모피 베스트까지 한날 한시에 볼 수 있다. 남 눈치 보느라 간절기마다 감기 걸리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패션 톨레랑스(관용)’가 참 부럽다.



7 이번엔 1980년대 청춘스타 브룩 실즈다! 잘생긴 눈썹과 건강한 광대뼈가 매력적인 그녀, 대표적인 여름 아이템인 빨간색 마린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남색 재킷을 입었는데, 손에 든 건? 맙소사, 겨울 아이템으로 손꼽히는 홈스펀 코트다. 이번 겨울엔 홈스펀, 헤링본 등 나이 들어 보이는 소재가 인기다. 소재도 디자인도 복고 전성시대다.



8 이번 시즌 버버리 광고 캠페인의 스트리트 버전이랄까. 핫 패션 아이템인 비행사 스타일 ‘에비에이터 재킷’에 카키색 카고 팬츠를 받쳐 입고, 추석날 뱃살처럼 후덕하게 늘어지는 가방을 든 모습이 골고루 멋스럽다.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과 올챙이배가 안타까울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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