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연재]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① 옥봉수·박임순씨 가족

중앙일보 2010.10.06 00:12 Week& 11면 지면보기
‘크게 버려야 크게 얻을 수 있다.’ 법정스님이 『무소유』에 남긴 말이다. 이처럼 모든 걸 버리고 진정한 자녀교육의 나침반을 찾으러 세계여행을 떠난 가족이 있다. “내 가진 걸 버리니 그제야 아이들의 참모습이 눈에 들어옵디다.” 마흔일곱 동갑내기 옥봉수·박임순 부부의 말이다.


학교도 쉬며 떠난 가족여행, 세계를 걸으며 미래를 그렸어요

글=박정식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부부는 천직을 버리고 아이들은 학업을 끊고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가족은 부모는 교육의 참 가치를, 아이들은 행복한 삶을 사는 법을 발견했다. 왼쪽부터 박임순씨·은택군·옥봉수씨·윤영양·은찬군. [황정옥 기자]
2004년 봄, 맏딸 윤영(19)이가 내민 중학교 첫 성적표에 옥씨 부부는 넋을 잃었다. 반 등수가 중하위권이었다. 부부는 학원 대신 체험학습을 다녔고 집안일을 도우면 용돈을 주며 자율성을 길러준 방식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다. ‘교사의 자녀가 어떻게 이럴 수가’라는 창피함에 아이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점수에 집착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반항으로 맞서고 때론 엇나갔다. 방황하던 윤영이는 대안학교에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원할 때 공부시키자”고 약속했던 부부는 초심이 흔들리자 다투기 시작했다. 박씨는 “엄마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교육부 장관이 아니라 옆집 엄마”라던 한 선배 학부모의 말이 떠올랐다. 화목하던 가족관계는 금이 가 있었다. 어느새 입시경쟁에 젖어가고 있는 모습에 부부는 갈등을 느꼈다.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고민한 끝에 세계여행을 탈출구로 정했다. 부부는 22년 된 안정된 교사직을, 아이들은 학업과 유희를 포기했다. 2008년 9월 부부는 퇴직금을 손에 쥐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주변에선 “미쳤느냐”며 만류했다. 더러는 “돈 자랑한다”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545일 동안 33개국 돌며 가족 간 교감 이뤄



여행은 다툼의 연속이었다. 가족 간 천차만별 다른 성격이 서로 부딪쳤다. 여독에 지쳐 빗속에서 텐트를 칠 때였다. 형 은택(18)이 텐트 치기에 열중하는데, 동생 은찬(16)은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작업이 지연되자 형과 누나는 동생을 자기중심적이라며 구박했고 동생은 “나를 따돌린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렇게 막내로서 공동체 속에서 역할과 책임을, 형과 누나로서 배려와 이해심을 각자 배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행에 지칠 때면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 우리를 왜 데려왔느냐”며 부모에게 화풀이하기도 했다.



여행은 교감의 장이 됐다. 여행 전엔 한 지붕 아래서도 바쁘단 핑계로 서로 관심을 갖지 못했다. 여행이 끝나가면서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의 그릇이 커졌다. 부모는 가르침을 내려놓고 자녀의 말에 귀 기울였다. 아이들은 욕심을 비우고 배려와 소통을 배웠다. 그렇게 545일 동안 5대륙 33개국을 여행했다.



교육은 속도가 아닌 방향, 잠재력 발견이 성과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로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틀렸단 걸 알게 됐죠.”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부모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고 옥씨는 놀랐다. 아이들은 앞장서 차편을 예약하고 숙소를 답사하고 여행경비를 아끼려고 협력했다. 박씨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었다. “돌아보니 아이들은 건강했더군요. 성적에 눈이 먼 나를 못 본 거죠. 교육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인도에서 선물을 살 때였다. 아이들이 가격을 깎으려고 3일 밤낮 방문과 흥정을 반복했다. 결국 처음의 30% 값으로 선물을 샀다. 배가 고파도 비행기 기내식을 기다리며 군것질을 참았다. 여행 속에서 아이들의 개성과 기질도 발견됐다. 윤영이는 소통 능력이 탁월했다. 낯선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먼저 대화를 나눌 정도였다. 귀국 후 윤영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찾아 피부·비만관리사를 공부 중이다. 여행 중 배운 영어와 스페인어로 해외진출도 구상 중이다. 은택이는 짐 정리에 능숙했다. 꼼꼼한 손길로 좁은 차 트렁크에 많은 짐을 차곡차곡 넣었다. 공간지각력이 우수하단 걸 깨달은 은택이는 현재 3차원 CAD를 배우는 중이다. 환율을 계산하고 오르내림을 예측하는 눈이 남달랐던 은찬이는 세무회계를 배우고 있다.



아이들은 귀국 후 모두 고졸검정고시를 치렀다. “여행 때문에 학업을 중단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대학 간판과 학벌보다 특기·적성을 찾아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단 걸 깨달았거든요. 행복하게 사는 법도 알게 됐고요. 세계를 여행하며 우리가 본 미래입니다.”



소개해주세요



교육의 새로운 가치관과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기존 상식이나 주변의 편견을 넘어 참된 교육적 가치를 실천한 여러분의 지인들을 소개해 주세요.



▶접수: e-메일 tangopark@joongang.co.kr, 전화 02-6262-5652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