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전자기 펄스

중앙일보 2010.10.05 19:08 종합 39면 지면보기
미국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지만, 첨단무기의 실전 효능은 충분히 검증했다. 대표적인 것이 ‘합동직격탄(JDAM)’이다. 일반 폭탄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장착해 악천후 속 원거리 목표물을 정확히 맞혔다. 보이지 않는 공격에 이라크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다음으론 ‘바람수정확산탄(WCMD)’이다. 폭탄마다 10개의 자탄(子彈)에 각기 적외선 센서가 부착된 4개의 폭탄이 들어있다. 장갑차나 전차 등 밀집된 목표물의 3만 피트 상공에서 투하, 수많은 작은 폭탄을 살포하는 식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주목 받았던 게 ‘전자탄(E-Bomb)’이다. ‘전자기 펄스(EMP)’를 표적에 방출해 전자장비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살상이나 파괴가 아니라 통신과 지휘체계의 붕괴를 노린 신개념 폭탄이다. 특히 EMP는 안테나·환풍기·수도관 등 도체(導體)만 있으면 어디든 침투한다. 폭탄을 피해 두꺼운 콘크리트 벙커에 숨어 있는 경우 그대로 고립무원(孤立無援) 신세가 되는 것이다. 지휘체계가 무너진 사담 후세인은 종내 사로잡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이런 EMP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등장한다. 워쇼스키 형제의 1999년 작품인데, 배경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는 2199년이다. 여기서 인간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지(電池) 역할이다. 생각하고 느끼는 현실이란 ‘통 속의 뇌(Brains in Vats)’가 인지하는 것과 같다. 전기 신호로 실제 접촉하고 경험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 진짜 감각기관을 가진 모피어스(그리스신화에서 꿈의 신 이름)가 호버크래프트를 타고 나타나 주인공 네오를 가상현실에서 진짜 세상으로 빼낸다. 그러다 네오는 함정에 빠지고, 인간을 추적·파괴하는 ‘센티넬’의 공격이 이어진다. 절체절명의 순간, 모피어스가 가진 무기는 단 하나, 바로 EMP다. 작동하자 ‘센티넬’은 초토화된다. 전자기기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EMP란 것을 워쇼스키 형제는 알았던 거다.



북한이 지난 8월 서해안에서 GPS의 전파를 방해하는 ‘GPS 재머’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GPS 수신을 방해해 위치와 시간 정보를 먹통으로 만드는 장치다. 전투기나 군함, 미사일 운용에 치명적 차질을 초래한다. 게다가 이는 EMP무기의 핵심 기술단계란다. 핵(核)위협에 이어 이제는 전자전(電子戰) 위협인가. 굶더라도 끊지 못하는 무력(武力) 중독증세를 어찌하랴. 



박종권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