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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할 일도 없는데, 왜 팀장 따라 야근해야 하나”

중앙일보 2010.10.05 03:00 경제 2면 지면보기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하지만 이직을 꿈꾼다. 요즘 입사한 신입사원들 얘기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회사가 이들을 이직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신입사원들이 이직을 고민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세 가지는 ‘전근대적 문화’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분위기’ ‘닮고 싶은 롤 모델 부재’였다.


[스페셜 리포트] 이직 고민하는 신입사원

이를 바라보는 선배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경험이 없어서 하는 얘기’란 시선도 있는 반면, ‘시대가 바뀐 만큼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입사원과 기업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 “구식 문화 여전하다”



지난해 1월 이동통신업체에 입사한 신입사원 K씨(29)는 늘 저녁 약속을 비워둔다. 팀장과 함께 야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7시쯤 퇴근하려고 하면 팀장이 “팀원들은 다 남아 있는데 너만 가느냐”며 눈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야근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남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야근 문화는 팀장 때문에 생겼다. 팀장이 낮에는 눈도 붙이고 손님도 만나면서 여유롭게 보내다가 밤에 퇴근하지 않고 일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K씨는 직속 선배에게 “낮(근무시간)에 일을 다 마치고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는 “나도 몇 번 말을 꺼냈다가 혼만 났다”며 “하다 보면 익숙해지니 참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팀장과 함께 퇴근해야 하는 분위기, 싫어도 참석해야 하는 회식…. 신입사원들은 전근대적인 사내 문화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한 유통업체 인사담당 과장은 “불필요한 야근은 하지 않고, 회식은 자율적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예전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한 석유화학업체 부장은 “회식을 하자고 해도 개인 사정 때문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며 “오히려 군말 없이 야근하거나 회식에 참석하는 후배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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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인테리어업체 신입사원 K씨(30)는 얼마 전 회사를 옮겼다.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답답한 분위기 때문이다. 그는 “회의 시간에는 ‘침묵이 미덕’”이라며 “회의는 수시로 열리지만 내 의견을 받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불합리한 점을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금융업체 신입사원 L씨(27)는 “불합리한 것이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한다. 그래서 얘기를 하면 ‘신입사원이 뭘 알아’란 식”이라며 “채용 설명회에서는 톡톡 튀는 이미지를 강조했던 회사가 입사해서 보니 군대나 다름없더라”고 말했다. 전자업체 신입사원 K씨(28)는 “불만사항을 제출하라고 해서 냈더니 오히려 꾸지람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소중히 여긴다면서 정작 의견은 잘 받아주지 않는 문화도 불만으로 꼽혔다. 이에 대해 한 제철업체 부장은 “의견을 들어보면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구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조선업체 부장은 “(상사와 신입사원 사이에) 시각차가 있다”며 “‘들어보고 판단한다’는 것이지 의견을 반드시 반영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3 “닮고 싶은 선배가 없다”



이동통신업체 신입사원 J씨(28)는 주말 근무에 대한 불만이 크다. ‘수당’ 때문이다.



“회사에서 사원들에게 야근·주말 근무를 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계속 초과 근무를 시킬 경우 인사 고과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랬더니 근무는 계속시키면서 기록에서만 쏙 빼더라.”



‘임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신입사원도 있다. 항공업체 신입사원 H씨(29)는 “직장인의 꿈은 임원이지만 별로 닮고 싶은 모습은 아니다”며 “임원만큼 윗사람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롤 모델’은 다른 게 아니다. 닮고 싶은 선배, 배울 점이 많은 선배다. 신입사원들은 회사에서 좀처럼 롤 모델이 될 만한 선배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 유통업체 과장은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대학 시절 닮고 싶었던 선배를 생각하면 안 된다”며 “멘토 제도를 운영해 선배로부터 빨리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 과장은 “완벽한 사람은 없다. 롤 모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배들이 보는 ‘로열티(애사심)’=신입사원들의 로열티를 바라보는 선배들의 시각도 엇갈렸다. 한 제조업체 임원은 “요즘 신입사원들은 예전과 달리 회사에 고마워할 줄 모른다”며 “좋은 대우를 해주면 로열티를 갖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한 석유화학업체 인사담당자는 시대가 바뀐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로열티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본인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조직에 충성하는 것을 로열티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신입사원은 ‘내가 받은 만큼 열심히 하는 것’을 로열티라고 본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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