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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문턱, 이젠 넘자 ①국가 리더십 키울 정치 아카데미 만들자

중앙일보 2010.10.05 02:17 종합 4면 지면보기
정치리더십의 선진화 없이 선진국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 리더십의 위기는 엘리트 충원의 위기다. 선진 각국들은 위기 상황에서 각각의 사회 상황에 맞는 타개책을 찾았다. 미국은 정치 아이디어를 내놓고 시장에서 펀딩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싱크탱크를 만들어 냈다. 일본은 기업이 , 프랑스는 국가가 나섰다. 독일의 경우엔 정부가 지원하고 정당이 중심이 돼 아카데미를 확립했다. 선진국의 성공사례와 함께 우리나라의 현실적 어려움을 살펴보고, 이를 타개할 전문가들의 제안을 들어본다.


[창간 기획 5대 어젠다]
‘정치엘리트 육성’ 미국은 시장이, 일본은 기업이, 프랑스는 국가가, 독일은 정당이 하는데 … 한국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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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간 싱크탱크가 양성소 2009년 기준으로 전 세계 싱크탱크(6305개)의 28.8%(1815개)가 미국에 있다. 393곳이 수도 워싱턴DC에 몰려 있다. ‘민간 싱크탱크=정치엘리트 시장’이라는 독특한 미국식 엘리트 충원 구조 때문이다.



워싱턴 중심 의회의사당 건물에서 북쪽으로 5분을 걸으면 매사추세츠 애비뉴 214번지 헤리티지재단이 나온다. 레이건·부시 정부에 리더십을 위한 정책 과제(‘Mandate for Leadership’)를 제시한 보수주의 싱크탱크의 본산이다. 재단은 보수주의 이념 전파를 위해 차세대 보수지도자 양성에 가장 적극적이다. 정치지망생 연수를 위해 기숙사까지 갖추고 있고 2008년 한 해 사업예산에서 26%(1308만 달러)를 교육프로그램에 썼다. 재단이 2004년부터 전국 대학생을 상대로 시작한 ‘젊은 지도자 프로그램(Young Leaders Program)’은 젊은 보수주의자를 의회와 정부에 진출시키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진보 싱크탱크에선 ‘미국진보연구소(CAP)’가 헤리티지에 맞서고 있다. CAP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권인수위원장을 맡은 ‘실세’ 존 포데스타 소장이 이끄는 신생 연구소다. 2005년부터 ‘캠퍼스 진보(Campus Progress)’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 대학생 지지자, 캠퍼스 언론을 상대로 풀뿌리 이슈 캠페인을 벌였다.



엘리트 충원을 싱크탱크가 맡는 배경의 하나는 미국 특유의 ‘느슨한 정당 형태’다. 민주·공화당이 선거기구 외에 당 정책연구소나 연수센터와 같은 공식 조직을 거느리지 않는다. ‘민주당=브루킹스연구소’ ‘공화당=헤리티지재단’처럼 색깔별로 짝을 지어 싱크탱크가 정당의 정책 개발, 인재 양성 기능을 전담하다시피 한다.



전국 200여 개 대학의 공공정책 대학원도 리더십 양성 기능을 맡는다. 피트 라우스 현 백악관 비서실장,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등 외국 국가수반을 배출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 대표적이다. 1986년 설립된 조지워싱턴대 정치관리대학원의 경우 입법·선거실무·홍보·로비까지 모든 직업정치 과정을 가르쳐 ‘정치전문가의 웨스트포인트’라는 별칭도 듣는다.



미국의 시장모델이 성공한 건 로버트 브루킹스(브루킹스), 조셉 쿠어스(헤리티지), 루셔스 리타워(케네디스쿨), 조지 소로스(CAP)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개인이 ‘더 나은 정치’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미국 싱크탱크의 토대는 ‘국가를 위한 좋은 아이디어와 정책’에 투자하는 기부문화”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정효식 기자






“일본이란 배에 사공 필요” … 79년 석유파동 때 사재 털어



일본엔 마쓰시타정경숙
 ‘정책 신인류’. 마쓰시타정경숙 출신을 지칭한 말이다.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정책 능력과 소양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재력·지연·혈연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는 일본의 낡은 정치 시스템을 깨뜨리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8월 민주당 집권을 가져 온 중의원 선거에서도 약진, 정경숙 출신이 초선부터 8선까지 31명(민주당 25명, 자민당 6명)이나 된다. “이러다 ‘마쓰시타정경숙당’이 생기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31년 전 정경숙을 설립한 이는 ‘경영의 신’으로 불린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마쓰시타 전기(현 파나소닉) 설립자)다. 70년대 석유위기 당시 ‘정치 빈곤’을 절감한 그는 "일본이란 배에 사공이 필요하다”며 사재를 털었다. 정경숙 프로그램의 근간은 ‘스나오(素直)’정신(곧은 정신)이다. ‘편견 없고 겸허한 자세’를 강조한다. ‘미래를 이끌 지도자는 남에게 지도받지 않고 스스로 뭘 배울지 결정한다’는 모토대로 상주 강사를 두지 않고 스스로 공부한다.



정경숙에서 10년간 연수생으로 동양철학 강의를 한 이광호(48)씨는 “머리가 좋고 지식이 뛰어난 이보다 정치에 확고한 뜻을 세우고 현장에서 깨달아가는 순수한 뜻과 열정을 지닌 이들이 정치적 센스가 훨씬 뛰어나고 정치 입문도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지도자 없어 독일에 치욕” … 드골, 2차대전 직후 설립



프랑스엔 국립행정학교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와 전직 총리 리오넬 조스팽, 도미니크 드 빌팽. 이들의 공통점은 국립행정학교(ENA·에콜 나쇼날 다드미니스트라시옹)란 특수교육기관 졸업자라는 점이다. 한 해 평균 입학생 수가 약 110명인 이곳에서 약 40년 동안 두 명의 대통령과 6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ENA는 1945년 샤를 드골 전 대통령(당시 임시정부 총리)이 주도해 설립됐다.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국가지도자가 부족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점령당하는 치욕을 겪었다는 게 드골의 생각이었다.



그런 만큼 교육과정이 특별하다. 어느 일이든 소화해낼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일반직)를 양성한다. 수습과 교육을 밀접히 연계시키고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한다. 특히 행정기관과 국·공영 기업 등에서 1년간 실무수습 때엔 정식 간부와 똑같은 일을 한다. 각국의 엘리트도 선발, 함께 교육한다. 각국 엘리트와의 연대감을 갖도록 하면서 동시에 국제감각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87년 ENA에서 연수한 박흥신 주프랑스 한국대사는 “ENA 출신 관료들은 장관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을 보좌할 인물로 우선적으로 욕심을 내는 인재들이기 때문에 정계로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나치 독재 되풀이 말자” … 6개 정당에 5400억원 지원



독일은 정당재단서 양성
 ‘3억5000만 유로(약5400억원)’. 독일의 6개 정당재단이 1년간 지원받는 연방정부의 지원금 액수다. 우리나라 7개 정당정책연구소에 지난해 지급된 국고 보조금 총액(126억4200만원)의 43배다. 독일·한국 간 국내총생산(GDP)의 격차(2009년 기준 네 배)를 능가한다. 이 가운데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기독교민주당),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사회민주당)의 예산은 연 1억2000만~1억3000만 유로로 싱크탱크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는 이에 대해 “나치 독재를 용인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당재단에 국민을 상대로 하는 민주주의 시민교육 임무를 맡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의 교육도 맡겼다는 얘기다. 이 덕분에 조기 정치교육이 이뤄져 10대 소녀 연방의원(2002년 녹색당)이 나오는 토양이 됐다.



정당재단을 처음 설립한 목적도 정치 후속세대 양성이었다. 아데나워 재단이 1956년 처음 출범할 당시 기민당 지도자들이 재단명을 ‘기독교 민주주의의 훈련사업을 위한 협회’라고 지었을 정도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인 에버트가 유언에 따라 처음에는 어려운 가정을 위한 장학사업을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었다가 46년 정당재단으로 탈바꿈했다.



정효식 기자






한국, 양성 시스템 왜 안 되나 



통칭 정치엘리트는 두 부류다. 선출직에 나설 사람과 그들을 보좌할 정치 전문가다. 둘의 조합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 또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선거전략가 칼 로브처럼.



국내 전문가들은 “두 부류의 정치엘리트 양성 모두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른 엘리트 양성 시도는 여러 갈래로 시작됐다. 한림국제대학원대학은 올 3월 전문직 석사 과정에서 ‘정치경영’ 전공을 개설했다. 최태욱 교수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도 선진국이 돼야 할 시기”라며 “프로페셔널한 정치가 필요한데 충원 시스템은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과정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도 내년부터 ‘한선정치지도자아카데미’를 꾸린다. ‘대한민국 선진화와 한반도 통일을 주도해 나갈 정치 지도자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정치엘리트 양성 아카데미의 전망이 아직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실제 이미 난관을 겪은 경우도 있다. 싱크탱크인 미래전략연구원(이사장 구해우)과 협력 관계인 미래재단은 2005년 9월 고려대와 공동으로 1년 코스의 ‘일민 미래국가전략 최고위 과정’을 꾸렸다가 2년여 만에 공동 운영에서 손을 떼야 했다. 구 이사장은 “재원이 넉넉지 않았다. 학기당 400만원을 책정했더니 학생들 모집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림대도 2006년 단기 과정으로 정치경영전문가 과정을 개설했다가 한 학기 만에 포기했다.



미국 또는 일본식 모델을 염두에 둔 사람들이 결국 직면하는 문제는 ‘돈’이다. 미국 시스템에 익숙한 한 정치 전문가는 “헤리티지재단의 예에서 보듯 미국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 기업 또는 단체·개인들이 기부하거나 투자하는 등 펀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아이디어와 이념엔 돈을 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독일처럼 정당을 통한 엘리트 양성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 사정을 알면 고개를 내젓는다. 정당 국고 보조금의 30%를 지원받는 정당정책연구소들이 차세대 지도자의 훈련이나 당원 교육보다 정치 현안에 대한 대응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를 포함한 7개 정당정책연구소가 선관위에 제출한 2009년 회계 내역에 따르면 총지출액 138억원의 사용처 중 인건비가 77억원(55.7%)인 반면 교육훈련비는 ‘0’원이었다. 연간 활동실적(1454건)도 ‘대학생 리더십아카데미’ 같은 교육·연수활동은 연구소 전체 활동의 92건(7%)에 그친 반면 정치 현안에 대한 수시 여론조사는 319차례나 됐다.



궁극적으론 공천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들여 키운 정치엘리트들이 실전에서 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의 박세일 이사장은 “지금까지 주요 정치 입문 통로는 정당 지도자에게 눈도장을 찍고 개인적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라며 “신인도 공인으로서 능력이 검증되면 뽑아 주는 그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새로운 정치 리더십은 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정당·국회 내 실전 정치-리더십 교육 시스템 필요”



전문가들 제언
 



◆가상준 단국대 교수(정치외교학)=“정당이 정치엘리트를 양성하는 게 좋다. 그게 어렵다면 국회 차원에서 여야 합의로 독립적인 정치엘리트 양성기관을 두는 걸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 )=“성공한 정치리더십은 결국 정치 내부에서 길러져야 한다. 그러려면 정당이 열린 구조가 돼야 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정치 실전(實戰)을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필요하다. 리더십과 전략, 자기 관리 등을 가르쳐야 한다.”



◆서현진 성신여대 교수(사회교육 )=“우리 체제는 초선 의원이 된 뒤부터 정치를 배운다. 정쟁 등 안 좋은 걸 익힌다. 정당 스스로 차세대 리더를 발굴·양성해야 한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전 농심 회장)=“과거엔 ‘잘살아 보자’는 한 방향이면 됐다. 이젠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올바른 교육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도 후회할 때가 온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싱크탱크와 정치인 간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 정치인은 낙선하면 곧 낭인이다. 미국은 싱크탱크에서 집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외교 )=“우리 정치엘리트는 국가전략과 세계적 흐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하다. 이를 보완 할 수 있는 국가전략원 설립을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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