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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3색의 교통신호기가 사람의 행동거지를 규제하다

중앙일보 2010.10.05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경부철도 개통 직후인 1906년께의 철도 건널목. 간수가 길 건너편에 매놓은 긴 줄을 잡아당겨 인마(人馬)의 통행을 막았다. 그로부터 30여 년 후, 이 일은 전기신호기와 자동 차단기의 몫이 됐고, 사람들은 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진 :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
 
1920년 6월, 서울에 처음으로 교통 전담 순사가 출현했다.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손님을 찾아 달려드는 인력거꾼을 단속하기 위해 경성역 앞에 한 명, 당대 서울 제일의 번화가였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에 12명의 순사가 배치됐다. 이들은 도로상에서 움직이는 것이면 사람이든 기계든 모두 통제했다.

서울 거리에 새로운 교통수단이 늘어날수록 교통순사들도 늘어났고 바빠졌다. 그렇지만 전차, 자동차, 마차, 자전거, 인력거, 손수레 등 온갖 바퀴 달린 것들이 굴러다니는 틈바구니에서는 교통순사가 아무리 ‘눈이 뒤집힐 정도로 바쁘게’ 살펴도 미처 통제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근대는 자동기계의 시대였다. 자동기계는 복잡하고 연속적인 동작들을 단순하고 반복적인 동작으로 분해해 여러 사람에게 분산시켰다.

1934년 말, 남대문로에 이 땅 최초의 전기 교통신호기가 등장했다. 이듬해 봄에는 종로와 을지로에도 설치됐다. 이후 이 기계는 계속 늘어나 현재는 흔한 도로 시설물이 됐다. 교통신호기는 그저 일정한 간격으로 세 가지 색깔을 반복해 비춰주는 단순한 기계지만, 사람들의 동작과 의식 모두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통순사는 행인과 차량을 감시했으나, 이제는 보행자와 차량 운전자 모두에게 이 기계를 주시할 의무가 생겼다. 사람들은 또 파랑, 빨강, 노랑의 세 가지 색깔이 의미하는 바를 깨우쳐야 했다.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길에서 비명횡사해도 할 말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됐다. 신호등은 색깔의 이미지에도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 파란색은 순조롭고 편안함을, 빨간색은 위태롭고 불안함을 뜻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이 기계는 사람들의 동작을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으로 규제했다. 사람들은 신호등의 색깔이 바뀐 시점을 기억하고 계속 진행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는 훈련을 거듭했다. 보행자든 운전자든 그 판단에 따라 감속하거나 가속해야 했다.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의식 한편에 언젠가는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키워왔다. ‘모던타임즈’에서 ‘터미네이터’와 ‘아이로봇’에 이르기까지, 그런 공포심을 형상화한 영화들은 무척 많다. 그러나 아직은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보다는 신호등이나 알람시계, 과속 감지기 같은 단순한 기계들이 지배하는 영역이 훨씬 넓고 크다. 현대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단조롭고 반복적인 기계의 움직임에 동작을 맞추어 온 사람들이다.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란, 사람들의 행위와 의식 속에 자리 잡은 기계적 속성이 지금보다 훨씬 커진 시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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