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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노벨상의 계절

중앙일보 2010.10.05 00:20 종합 35면 지면보기
1995년 9월 김영삼 대통령은 “노벨상에 대한 국가전략적 도전”을 선언하며 고등과학원 설립을 전격 발표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2010년까지 과학기술 7대 선진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욕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이듬해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경제학 분야의 창조적 과학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고등과학원을 출범시켰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기초과학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라는 점만 확인해 주고 있다. 과학자를 ‘올림픽 선수촌 방식’으로 육성하려 한 시도 자체가 애당초 가당치 않았던 발상이다. 말 많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있지만 기초과학·경제학 분야에서 한국은 여전히 노벨상의 불모지(不毛地)로 남아 있다.



노벨상에 관한 한 유대인은 독보적이다. 1901년 시작된 노벨상의 역사에서 지난해까지 단체와 기관을 제외하고 영예를 안은 개인(공동 수상자 포함)은 모두 806명. 이 중 네 명 중 한 명꼴(184명)이 유대인이다. 미국 국적의 수상자는 282명인데 3명 중 한 명이 넘는다. 특히 매독의 치료제를 개발한 에를리히,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등 의학·화학·물리학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69년 신설된 경제학상은 새뮤얼슨을 비롯해 수상자의 절반가량이 미국 국적의 유대인이다.



전 세계 인구 68억 명 중 1%에도 크게 못 미치는 1400여만 명에 불과한 유대인이 노벨상을 독식하는 이유는 뭘까. 외교관 출신의 박재선 교수는 저서 『유대인 파워』에서 유대인의 역사와 교육을 꼽았다. 과거 유럽에서 십수 세기에 걸친 박해와 추방에 시달리며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인은 한 곳에 정착해 기반을 닦는 농업이나 생산업에 종사하기 힘들었다. 잦은 이동과 생존 본능은 ‘머리’, 즉 두뇌 개발에 의존하도록 했다. 여기에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교육이 더해졌다는 분석이다.



노벨상의 계절이 또 왔다. 4일 의학상을 시작으로 다음 주 초까지 물리학·화학·문학·평화·경제학상 수상자가 차례로 발표된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과학 노벨상’을 외쳐댔지만 공염불(空念佛)이었다. 교육이든, 나라 정책이든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하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어렴풋이 답을 찾을 수 있겠다. 꼭 노벨상이 탐나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없으면 나라의 미래도 어둡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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