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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이라크인에게 경의를

중앙일보 2005.02.16 18:39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에서는 민주주의가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고 한다. 워싱턴과 파리의 많은 사람은 CNN 화면을 통해 매일 보도되는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의 폭탄테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점령에 맞서 이라크 국민이 민족해방 투쟁에 나선 것"이라고.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이야말로 이라크 문제를 둘러싼 가장 큰 오해다. 이라크 총선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달 30일 실시된 총선의 투표율은 60%에 달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 선거 투표율보다 높다. 수니파의 투표율도 25%에 달했다. 수니파가 주로 테러리스트 출몰 지역에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높은 투표율이다.



'테러리스트'보다는 '저항군'이라는 말이 듣기 좋다. 우리는 그들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것인가? 그들이 외국 점령자들에게 맞서 싸우기 때문에 저항군인 것인가?



총선 전인 1월 23일 이라크의 저항단체 알카에다를 이끄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핵심은 그의 추종자들이 미국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개념을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곤 이것이야말로 "이단이며 완전히 그릇된 생각"이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가 인간이 아닌 신을 섬겨야 한다는 이슬람교의 근본과 상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에서 신앙과 신념의 자유라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자유란 인간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수 있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떤 종교든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알자르카위는 "믿음을 바꾸는 자가 있거든 그를 죽여라"고 말한다.



주권은 국민의 것? 어불성설이다. 이슬람교에서 그것은 신의 것이다. 표현의 자유? 안 된다. 그것은 국민에게 '성스러운 존재'를 매도할 수 있게 허용하는 일이다. 제휴의 원칙도 있을 수 없다. 이단 파벌을 합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과 정치를 분리한다? 불손하기 짝이 없다. 다수의 법칙? 이슬람교에선 코란(경전)과 순나(규범적인 관행)와 일치하는 것만이 진리다. 알자르카위의 스승인 무하마드 알마카디시가 말했다. "민주주의란 전능하신 알라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라크 작가 이브라힘 알하리리는 "원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해 왔다"며 "국민은 이제 그것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알하리리는 한때 정부로부터 고문을 받는 등 수난을 겪은 뒤 33년 추방생활을 마치고 이라크로 돌아갔다. '알자르카위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대답은 "노"다. 1월 30일 투표하기 위해 줄 선 국민이 그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2002~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반대했던 수백만 세계인은 미국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판단력을 잃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의 전략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 역시 맞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보자. 그때 많은 나라가 손잡고 싸운 이유는 독일과 일본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또 괴롭히는 이들의 행태를 끝내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독일과 일본의 민주주의를 내다본 이는 없었다. 아이러니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독일과 일본의 발자취를 따를 것인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라크인이 극히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다가가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그들이 폭정과 맞서 싸워 이겨내기를!



정리=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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