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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형제 살해

중앙일보 2010.09.30 20:52 종합 39면 지면보기
누군가의 잔칫날이 다른 이에겐 초상날이 되기도 한다. 그 기막힌 희비쌍곡선이 옛 오스만 왕조에선 거듭 벌어져 탈이었지만. 1574년 12월 22일, 술탄(황제) 무라드 3세의 즉위식과 그의 다섯 형제들 장례식이 한날에 연이어 치러진 것처럼 말이다.



오스만의 술탄들은 수많은 첩을 거느렸기에 왕좌를 놓고 어미 다른 아들들끼리 피 튀기게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승리해 권좌에 오른 왕자는 자기 형제들을 모조리 비단 끈으로 목 졸라 죽여버리는 게 관행이었다. 혹시 모를 왕위 찬탈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무라드 3세의 아들 메흐메드 3세가 즉위할 땐 무려 19명이나 되는 형제들 목숨을 앗았을 정도다.



때론 사후(死後) 정세 불안을 염려한 아비가 미리 손을 쓰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술레이만 대제가 그랬다. 후계자로 점찍은 셀림 외에 다른 아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모두 제거해 버렸다. 제국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이들에게 부자나 형제 간의 사사로운 정 따윈 한낱 사치에 불과했던 게다.



죽음을 앞둔 칭기즈칸 역시 어렵사리 구축한 몽골 제국의 앞날을 위해 총애하던 맏아들을 희생시켰다는 설이 있다. 장남 주치는 그의 아내가 다른 부족에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와 낳은 자식. 그러다 보니 후계를 정하기 위해 소집한 쿠릴타이(회의)에서 둘째 아들이 “우리가 어찌 사생아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대놓고 반발하다 형제간 주먹다짐마저 벌어진다. 얼마 후 돌연 주치가 죽어버리자 칭기즈칸이 아들들의 권력투쟁을 막으려고 꾸민 일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3대 세습으로 체제 연장을 꿈꾸는 북한에 대해 “세계에서 유일한 코미디” “최고의 리얼리티 쇼”란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마카오에 유배시킨 김정남도 암살하려 했다 하니 ‘막장 드라마’란 평판까지 더하게 생겼다. 혹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경쟁자를 없애고 군만 장악하면 ‘왕권’이 절로 보장된다고 여기는 걸까.



“나라를 정복하는 것과 군대를 정복하는 건 다르다…나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정복할 수 있다.” 칭기즈칸이 죽기 전 아들들에게 남긴 가르침이다. “백성이 행복하기 전엔 지도자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며 넌지시 해법도 제시했다. 그런데도 못난 아들들은 아비의 제국을 온전히 지켜내지 못했다. 이런 금쪽같은 유훈조차 받지 못할 김정일의 어린 아들은 오죽할까.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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