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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통령을 운전석에 앉혀서는 안 된다”

중앙일보 2010.09.30 20:51 종합 39면 지면보기
“정치 생활의 제1 규칙은 대통령을 절대로 운전석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에 나오는 닉슨의 말이다.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한 닉슨. 캘리포니아 남부의 휴양도시인 샌클레멘티에서 여생(餘生)을 보내고 있던 그는 코미디언 프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관을 내뱉듯 지껄인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에게 운전을 맡겨?” 브레즈네프에게 운전대를 맡겼더니 페달을 밟기 시작하는데, 방지턱에선 날고 길가의 장벽은 여기저기 부수면서 질주하다 멈추더라는 것이다.



물론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 닉슨의 독백 같은 대사는 민주정치의 요체를 말해주고 있다. 브레즈네프 같은 권력자에게는 국민의 신뢰가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여론을 조작하거나 테러를 통해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정치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효과적인 통치를 할 수 없다. 우리 정치체제에서 대통령은 국가 이익의 수호자인 동시에 국가 이상의 심벌이다. 그래서 국민은 나라가 어떠한지를 알고자 할 때는 대통령을 쳐다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직 이러한 미션에 성공한 대통령이 우리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헌법상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아 권력 페달을 밟는 것은 헌법이 제공한 특권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특권이 여론을 무시하거나 오도(誤導)하는 데 이용된다는 데 있다. 진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이명박(MB) 정권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총리 후보자가 대통령의 귀만 뚫어줘도 성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MB의 페달 때문에 우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유치하는 성과를 올리게 됐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MB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 대해 얘기했듯이, 카이사르가 국민을 위해 권력의 페달을 밟는다면 왜 카이사르의 권력 페달을 문제 삼아야 하는가라고….



과연 그럴까.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실세(實勢)라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누가 권력을 휘두르느냐고. 예외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그래서 정부의 장관을 지낸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과연 책임을 지고 국정 운영을 할 수 있었느냐고. 하나같이 고개를 흔든다. 국장 하나 마음대로 임명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 우리 장관들의 처지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각은 청와대의 ‘괴뢰’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국정의 야전사령관인 장관들이 청와대의 눈치나 보며 ‘자식 챙기는’ 일이나 하고 있다는 시중의 비아냥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냉소적인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바로 여기에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의 야심적 페달을 걱정했듯이, 우리가 운전석에 앉은 MB의 페달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국민과의 사이에 신뢰의 갭이 생겨났을까? 탈레이랑이 알렉산더 1세에게 한 다음 말이 떠오른다. “라인 지역과 알프스 산맥, 피레네 산맥은 프랑스의 정복지이고 나머지는 모두 황제의 정복지입니다. 하지만 황제의 땅은 프랑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G20, 핵 정상회의, 한·미 동맹은 한국의 이익입니다. 그러나 고소영, 영포, 병역면제 내각은 대통령의 이익일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권력은 이러한 신뢰의 갭을 제때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이뤄 낼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는 것 같다. 공정(公正)과 사정(司正)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 MB가 그리는 공정사회는 ‘베일의 뒤’에 가려져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베일의 무지(無知)’ 뒤에서 빈부나 권력 차이와 상관없이 각자의 이익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가 탄생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결코 2010년 8월 15일 이전과 같은 사회일 수는 없다.



MB가 이러한 사회를 위해 새로 페달을 밟을 기세다. 하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전대에 앉으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한 충동이 앞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운전 페달은 내각에 맡기는 것이 순리다. 그래야 합리적인 정책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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