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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자녀가 사춘기 되면 가르쳐야”… 1920년대의 성교육 담론

중앙일보 2010.09.30 20:47 종합 37면 지면보기
1920년대 청소년들의 세태를 풍자한 ‘형형색색의 경성 학생상’이라는 글의 삽화(개벽, 1925. 4.). ‘근일(近日) 중등학생’으로 표현된 남학생이 잔뜩 멋을 내고 손에는 바이올린과 ‘LOVE’라고 적힌 책을 들고 담배를 문 채 걸어가고 있다. 주변에서 그를 쳐다보며 웃는 여학생들의 속마음은 어떤 빛깔일까.
“자녀가 사춘기 되면 가르쳐야”… 1920년대의 성교육 담론



한 여고의 교사가 “성교육의 결핍은 화류병(성병)을 만연시키고 비밀 해산, 사생아, 성매매, 간음, 강간, 낙태, 영아 살해, 영아 유기 등이 증가하며 불량 청소년이 늘어나 치정사건이나 성도착적 행위들이 범람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1927년의 일이었다(김윤경 ‘성교육의 주창’, 『동광』, 1927. 3.).



당시 배화여고 교사였던 국어학자 김윤경(金允經·1894~1969)은 성욕에 대해 질문한 학생에게 자신이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고, 이에 그 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는 일화를 언급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교육자가 성 문제에 대한 대화를 회피하거나 금기시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성 관련 사고 및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며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 방법으로 먼저 가정 내에서 실천해야 할 성교육부터 제시한다. “발정기 이전인 자녀에게는 그 질문을 받을 때나 생물의 성적 작용을 가르칠 때에만 정당하고 대범한 원리를 설명”하고, “세밀한 해부학적 성욕 생리는 춘기발동기(春機發動期)에 달한 자녀에게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생리학·위생학을 가르치면서 성욕과 성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해야 하며, 수신(修身) 과목에서 성윤리를 가르치는 일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처럼 가정에서의 대략적인 성교육과 학교에서의 전문적 성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 유명 인사에는 소설가 김동인, 이화여고보 교사 김창제, 목사이자 소설가였던 전영택, 당시 숭실전문학교 교사였던 양주동 등도 있었다(‘성에 관한 문제의 토론-성지식·성교육·남녀교제’, 『동광』제28호, 1931.12.1).



그러니 한국에서도 벌써 100년 가까이 청소년의 성교육이 모색돼 온 셈인데, 청소년의 성의식엔 그다지 큰 진전이 없는 듯하다. 최근 청소년의 성과 피임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26%만이 피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관계 경험이 있는 청소년 응답자 중 54%가 성관계 때 피임법을 모르거나 피임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통계 결과는 함께 조사한 세계 25개국 청소년 중 최하위 수준의 성지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한국 청소년 74% 피임법 잘 모른다’, 『의협신문』, 2010.9.24.).



이는 나날이 청소년 성 관련 사건사고가 늘어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콘돔’이라는 단어 검색조차 성인 인증을 받아야 하는 한국 사회의 ‘진도’ 늦은 성교육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닐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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