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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에서 동반성장으로 … 서로 윈 - 윈하는 산업생태계 만든다

중앙일보 2010.09.30 02:25 경제 2면 지면보기
강자와 약자 간의 상시적인 상거래 관계를 ‘공정하게’ 규율하려는 하도급법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지난해 도입된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도 매우 한국적인 제도다. 사적인 계약 관계에 공권력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외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경험이 남긴 개입주의의 잔재인가, 아니면 한국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가 그만큼 심하다는 방증인가. 정부가 석 달간의 고심 끝에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더 보완하는 내용을 포함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의 종합판을 29일 내놨다.


[스페셜 리포트]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9·29 대책

이명박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 대책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회의에서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대책을 논의했다. 왼쪽부터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 대통령,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연합뉴스]
상생과 동반성장. 그게 그거 같지만 정부 설명은 좀 다르다. 정부는 ‘상생’을 털고 ‘동반성장’을 취했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29일 브리핑에서 “용어 변화에 유념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두 용어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상생이라고 하면 왠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시혜적으로 베푸는 것 같다. 또 대기업들은 정부가 자꾸 푸시(push)를 하니까 마지못해 응하는 문제가 좀 있었다. 이번에 동반성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대기업도 협력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 없이는 자신의 경쟁력 확보가 안 된다는 기업 환경 변화를 인식해야 될 때가 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29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업 생태계를 화두로 삼은 것도 비슷한 이유다. 대기업이 동반성장을 선도하고, 중소기업은 역량 있는 파트너로 자리를 잡아야 하며, 정부는 생태계의 조력자가 되겠다는 게 이번 발표의 큰 그림이다.



기획재정부 이석준 정책조정국장은 “가치생산은 대기업이 전담하고 중소기업은 가치배분에만 참여하는 구태에서 이젠 벗어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가 직접 나서는 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식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9·29 대책으로 대기업 책임은 무거워지고 중소기업 발언권은 세졌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시장경제 원칙을 가능한 한 훼손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 신청권을 준 게 대표적이다. 조정신청이 들어오면 대기업은 납품기업 중 조합에 소속된 모든 업체를 상대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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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중소기업 쪽에서 강력하게 요구했던 ‘납품단가 연동제’는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자재값 인상분을 대기업과 소비자에게 100% 전가하게 되면 중소기업의 원가 인하 노력이나 혁신 의지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납품단가 연동제는 공급 측면만 생각하고, 수요 측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며 “수요자가 연동제로 인상된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다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반시장적”이라고도 했다.



중기협동조합에 단가조정 협상권을 주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는 명백한 공동행위(카르텔)이고, 자칫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협력 중소기업까지 과보호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국장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 거래질서는 당사자들이 사적으로 협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협동조합 등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기업별 ‘동반성장지수(win-win index)’를 산정해 공표하는 것도 동반성장을 위해 시장과 여론의 힘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성적표가 좋은 우수기업은 포상하고 정부 사업에 참여할 때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가격을 내리고 ‘너 아니라도 할 데가 많다’는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시장경제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를 하는 대기업도 문제지만, 듣는 중소기업도 문제다. ‘너 아니라도 할 데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중소기업일수록 정부 지원에 목매달고 단체의 힘에 의지하려 한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동반성장 대책으로 이미 특정 기업의 ‘생태계’에 포함된 중소기업들은 예전보다 기업하기 좋아졌다. 이게 ‘생태계’ 밖의 중소기업에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되면 곤란하다. 2차 이하 협력사로 하도급법 적용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이를 감안해서다. 1, 2차 협력 중소기업에도 공정한 거래 질서에 대한 책임을 지우기로 한 것이다.



‘상생’은 역대 정권마다 강조했던 화두였다. 명분은 좋았으나 실적은 지지부진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동반성장’만큼은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특히 청와대가 직접 이행실적을 챙기기로 했다. 경제수석을 반장으로 하는 점검단이 매달 실적을 점검해 분기별로 국민경제대책회의에 보고한다. 민간 주도로 설립되는 동반성장위원회도 대기업들이 제대로 하는지 이행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대기업의 ‘상생 스트레스’는 만성화될 것 같다. 정부 말처럼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대책 나왔나=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영역을 정하고 거기에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2006년 말로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와 비슷하다. 법으로 강제하지는 않고, 민간이 주도해 자율적으로 시행한다는 게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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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가를 깎으려면 대기업이 이유를 증명하도록 했다. 대기업들이 임원을 평가할 때 단가 인하보다 동반성장 실적에 중점을 두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말로 주문했다가 사정이 바뀌면 없던 일로 하는 관행도 금지했다. 기술탈취의 수단으로 악용돼 온 원가계산서의 경우 일단 제도는 유지하되 서면요구를 의무화하고, 여기에 목적과 대가, 비밀유지, 권리귀속 등을 반드시 적도록 할 방침이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5대 기업이 2012년까지 1조원의 펀드를 마련해 협력업체의 기술, 생산성 향상에 투자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석유화학업계는 1개월 전에 가격을 미리 알리도록 했고, 철강업체들에는 가격을 올리지 않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서경호·최현철 기자



동반성장 말말말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도 시장바닥에 가 사람들 만나고 뭘 도와주면 좋겠는지 생각해 미소금융(서민 소액신용대출 사업)을 만들어서 한다.



중소기업 자체도 대기업에 도움이 되는 경쟁력을 갖추고자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전제 하에서 동반성장이 될 수 있다.



서로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효과가 안 나올 때가 많다…서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처음에 진정성이 없다가도 있는 것으로 나가게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서로 잘한다’는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



산업 생태계가 건강하려면 역량 있는 기업은 살아남고, 아닌 기업은 퇴출돼 역량 있는 기업에 자원이 흡수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이제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대기업 마음먹기에 달렸다. 특히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동반성장 추진점검반장을 맡기로 한 만큼 실효성 있는 감시기구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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