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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센서스 민주주의’

중앙일보 2010.09.30 01:26 종합 38면 지면보기
민주주의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 웨스트민스터 민주주의, 입헌 민주주의, 자유 민주주의, 전자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센서스 민주주의’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센서스(인구조사)와 민주주의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정부가 국민·유권자 수, 각종 국민 생활 수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이를 바탕으로 민주적인 정책을 펼 수 있다. 뉴욕대(NYU)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찰스 시프 교수에 따르면 “센서스 실시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행위다”.



세계 민주주의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이다. 마침 올해는 양국에서 센서스가 실시되는 해다. 4000년 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구조사를 실시한 중국은,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건국 이후 여섯 번째 인구조사를 11월 1~10일에 실시한다. 현재는 8월 15일부터 시작된 예비 조사 단계다. 인구조사 실시가 아예 헌법에 명시된 미국은 4월부터 실시된 23번째 인구조사 결과를 재확인하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은 12월에 인구조사 결과를 미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결과는 2012년 실시될 하원의원 선거에 반영된다.



중국과 미국의 센서스를 계기로 양국 민주주의의 양상이 일부 드러나고 있다. 공통 분모는 ‘불신’이다. 미국은 중국이 표방하는 ‘중국적 특색의 민주주의’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 보고 뭐라고 하기에는 미국도 불신 문제와 무관한 게 아니었다.



우선 중국 센서스를 들여다보자. 중국 국민이 달라졌다. 10년 전 인구조사 때와 다르다. 인구조사요원들이 방문했을 때 문을 잘 안 열어주거나 답변을 거부하는 일이 상당수 발생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 중국 국민의 권리 의식이 향상된 게 원인이다. 중국 국민은 인구조사로 사생활이 침해되거나 재산 정도와 같은 개인 정보를 정부가 알게 되면 악용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인구조사 과정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600만 명 조사요원을 단단히 교육하고 있다. 조사·방문 기법에 대한 32분짜리 만화 영화를 보게 하기도 한다.



인구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 국민의 불신에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중국에서 실시할 가능성을 엿보는 견해도 있다. 중산층을 필두로 국민이 정부에 대해 자기 권리 주장을 하는 데서 민주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 인구조사에서 발견되는 불신은 미국 민주주의의 불협화음을 노출한다.



“인구조사요원들이 정부 돈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휴가를 즐겼다”는 풍문이 나돌아 인구조사국이 적극 해명에 나서야 했던 것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이다. 예사롭지 않는 불신 사례도 있다.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은 가구 내 거주자의 수를 제외한 소득·인종 등 다른 정보를 인구조사가 요구하는 게 위헌(違憲)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에서 센서스가 갖는 의미에 대한 본질적인 이의가 제기된 것이다. 인구조사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2010 센서스 기간에 인구조사요원에 대한 폭력이나 신체적 위협이 700건 발생했다. 한편 미 정부의 이민 정책에 반발해 기왕에 인구조사 참가가 저조한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이 센서스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2000년 센서스에서는 25만 명 정도의 히스패닉계 미국인이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히스패닉계 미국인들이 센서스에 참가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해 어느 스페인어 방송은 지난해 10월에 방영된 연속극에 인구조사를 계몽하는 내용을 대사에 삽입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도 11월 1일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한다. 통계청은 29일 2010 인구주택총조사 대국민 홍보를 위해 대학생 서포터스를 선발하고 발대식을 가졌다. 우리 정부는 유엔인구기금의 요청으로 남북협력기금에서 북한의 2009 센서스 비용 550만 달러 중 4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북쪽 사정을 생각하면 암울하지만 우리만이라도 11월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센서스 민주주의’를 구현할 방도를 찾자.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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