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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새로운 동북아시대에 대비하자

중앙일보 2010.09.30 01:24 종합 38면 지면보기
일본에선 요즘 국세조사(센서스)가 실시되고 있다. 5년마다 시행되는 일본의 국세조사는 올해로 19번째. 일 정부는 “일본이 인구 감소국으로 돌아선 후 처음 시행되는 국세조사”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한 일간지에 소개된 국세조사 변천사가 눈길을 끌었다. 국세조사 표어에 나타난 일본의 사회상을 분석한 짧은 기사였다. ‘국세조사는 모두가 그리는 일본의 자화상’이라는 올해 표어가 저출산 고령화로 힘을 잃은 작금의 일본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국세(國勢)가 ‘국가의 기세’가 아닌 ‘일본의 정세(情勢)’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해당하는 60~70년대(60년 ‘국세조사는 국가를 발전시키는 기초이자 힘’, 70년 ‘1억의 미래로 이어지는 국세조사’)와 비교하면 힘과 기세가 한풀 꺾인 느낌이라는 것이다.



굳이 케케묵은 옛 자료들을 들춰내 비교하지 않아도 요즘 일본을 보고 있으면 “가세(家勢)가 기울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급격하게 발전한 일본은 80년대 일본 기업들을 앞세워 전 세계 경제를 장악했다. 그러던 일본경제는 90년대 초 거품이 꺼지면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나락에서 헤매고 있다. 민간기업 종사자의 평균 급여가 2년 연속 감소하고 있고,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도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는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올해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자리를 중국에 넘겨줬다. 2분기 중국의 GDP는 1조3000억 달러로 같은 기간 1조2000억 달러에 그친 일본을 따돌렸다. 글로벌 기업들의 아시아총국이 도쿄에서 베이징·상하이로 옮겨간 지는 이미 오래다.



최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외교전쟁은 일본을 또 한 차례 비참하게 만들었다. 일본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어선의 선장을 공무집행방해 협의로 체포해 놓고도 재판장에 세워보지도 못하고 석방하고 말았다. 중국의 힘의 외교 앞에 굴복한 것이다. 중국을 전적으로 지지한 러시아는 물론 일본과 전통적인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도 섣불리 중국을 비난하지 못했다.



센카쿠열도 사태로 비롯된 중·일 갈등은 해묵은 영유권 다툼의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동북아질서 재편을 의미한다. 이번 사태로 일본 국민은 ‘중·일 우호관계’라는 슬로건들이 현실외교에서는 한낱 추상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교훈을 깨달았다. 우익들은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만 안 한다고 주변국들과 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일부 의원은 센카쿠열도에 자위대를 상주시키자는 담화를 발표했다. 자칫 패권주의로 흐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일본은 우리가 무시하지 못할 강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의 2배, GDP는 5배가 넘는 세계 3위 경제대국이다. 이런 일본을 상대로 막강한 힘을 과시한 경제대국 2위 중국. 우리는 지금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외교·경제분야의 ‘동북아 3국 구도’가 ‘중·일 2강 체제’로 전환된 뒤엔 이미 늦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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