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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覇

중앙일보 2010.09.30 01:22 종합 37면 지면보기
중국의 역사는 BC 770년~BC 476년 기간을 ‘춘추(春秋)시대’로 규정한다. 크고 작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사기(史記)』는 “춘추시대 동안 시해된 군주가 36명, 망한 나라가 52개에 이르렀으며 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친 군주는 셀 수 없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혼란의 시기 여러 나라를 힘으로 제압한 제후가 등장했으니, 그들을 일컬어 패자(覇者)라 했다. 흔히 춘추오패(春秋五覇)로 불리는 제(齊)나라 환공(桓公), 진(晋)나라 문공(文公), 송(宋)나라 양공(襄公), 초(楚)나라 장왕(庄王), 진(秦)나라 목공(穆公) 등이 그들이다. 혹자는 송 양공과 진 목공을 빼고 오(吳)왕 합려(闔閭)와 월(越)왕 구천(勾踐)을 넣기도 한다. 이들은 복속한 제후들을 한자리에 모아 평화를 다짐받는 회맹(會盟) 의식을 열기도 했다. 그 힘이 바로 패권(覇權)이다.



한자 ‘覇’는 이렇듯 ‘여러 제후의 맹주(盟主)’를 지칭하는 말이다. ‘재상 관중이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도록 했다(管仲相桓公, 覇諸侯)’는 『논어』의 기록에 그 뜻이 온전히 남아 있다. 천하를 놓고 유방(劉邦)과 다퉜던 항우(項羽)는 스스로를 ‘초패왕(楚覇王)’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맹주를 뜻하던 ‘패(覇)’를 정치사상의 한 형태로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맹자였다. 그는 당시의 정치 상황을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로 구분해 설명했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편은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것을 왕도라 하고, 힘으로써 인을 가장하는 것을 패도라 한다(以德行仁者王, 以力假仁者覇)”고 했다. 그는 또 “패자(覇者)는 무력에 의존해 나라를 키우며, 힘으로 사람을 설복시키려 하지만 진정한 심복(心服)을 얻지는 못한다”고 했다. ‘왕도’를 정치사상의 핵심으로 추구했던 맹자에게 ‘패도’는 무력이나 폭력에 의존하는 하급 정치였을 뿐이다.



남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놓고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충돌을 계기로 동아시아에서 패권 다툼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전방위로 일본을 밀어붙이는 중국 외교에서 무서운 ‘패권주의’의 일면을 보게 된다. 맹자가 꿈꾸었던 왕도정치는 ‘영토’라는 바람에 흩어져버리는 담배연기와 같은 존재였던가….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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