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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김정은 세습을 보며

중앙일보 2010.09.28 20:08 종합 34면 지면보기
민주당이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말이 있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소련을 ‘악(惡)의 제국’이라 불렀지만, 그러면서도 대화했다. 우리도 왜 북한에 그렇게 못하나?”



맞는 말이다. 한데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레이건은 ‘대화가 가능한’ 소련(정확히는 고르바초프 정부)하고만 대화를 했다.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소련(고르바초프의 전임자들 정부)에 대해선 철통같은 압박정책을 고수했다.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지칭한 건 정확히 1983년 3월 8일 플로리다에서 복음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다. 당시 소련은 강경 냉전주의자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이 서방과의 군사적 대결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83년 9월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다. 이런 안드로포프에 대해 레이건은 ‘악의 제국’ 딱지를 붙이고, 국방 예산을 두 배로 늘려 소련의 핵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파괴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했다. 이런 강공은 1년 뒤 안드로포프가 병사(病死)하고 동년배의 냉전주의자 체르넨코가 집권한 뒤에도 흔들림 없이 계속됐다.



레이건이 마침내 소련과 대화를 고려하게 된 건 체르넨코가 또다시 1년 만에 숨진 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부터다. 50대 초반의 고르바초프는 스무 살 가까이 많았던 전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국과 군비경쟁을 계속한다면 소련은 살아날 수 없다”고 간파한 그는 개혁과 개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합리적인 언술로 서방의 마음을 샀다.



“이제야 대화가 가능한 소련 지도자를 만났다”고 여긴 레이건은 85년 3월 고르바초프 취임 직전 “가장 빠른 편리한 시일에 워싱턴에 초대하고 싶다”는 친서를 보낸다. 그해 11월 아이슬란드에서 역사적인 미·소 정상회담을 한 두 사람은 2년 만에 획기적인 전략무기감축협정을 타결하고, 냉전 종식의 금자탑을 쌓게 된다. 88년 5월 고르바초프와 붉은 광장을 산책하던 레이건은 “아직도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아니, 그건 다른 시기, 다른 시대의 얘기였다”며 미소 지었다.



북한은 어떤가. 개혁·개방의 ‘개’자도 꺼내지 못하게 사회를 억압하고, 화폐 개악(改惡)·천안함 폭침(爆沈)을 일삼는 리더십이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한술 더 떠 20대 아들을 대장에 진급시키고, 3대 세습 채비에 들어갔다. 레이건이었다면 이런 리더십과는 대화 대신 ‘악의 나라’란 딱지를 붙이고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설 때까지 압박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우리는 미국이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은 레이건이 아니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 주민들을 인간답게 살도록 도와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대화를 위한 대화’만 외치는 건 답이 아니다. 북한도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고르바초프 같은 열린 인물로 지도자를 바꿈으로써 미국과 대화의 끈을 잡아 안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던 소련의 교훈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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