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북한, 그리고 한반도의 내일

중앙일보 2010.09.28 19:59 종합 34면 지면보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6살의 3남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은밀히 진행해오던 후계작업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이로써 김정은은 북한 ‘김씨 왕조(金氏 王朝)’의 ‘왕세자’로 책봉(册封)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최고지도자의 아들을 다시 한번 최고지도자로 ‘책봉’하는 행태는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공식 국가 명칭은 북한이 공화국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를 갖지 못해 주권자가 아님을 이번에 다시 한번 목격했다. 북한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과 가족, 그리고 소수 특권층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역사 시계가 북한에선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북한의 시대착오적 세습 행태도 안타깝지만 더 큰 문제는 권력 세습 과정의 불안정성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는 과정은 시간도 길고 치밀했다. ‘유일영도체계’와 같은 후계세습 정당화 이념을 개발하고 이를 북한 전 주민들에게 수년 동안 교육하는 것은 물론, 김정일 위원장 본인도 노동당의 말단 조직원부터 시작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10여 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세력 기반을 확대하는 등 자신의 지배체제를 스스로 구축하는 과정을 거쳤다. 1974년 ‘왕세자’ 지위에 오른 김정일은 이후에도 6년 동안이나 ‘당(黨)중앙’으로 불리면서 외부에는 모습을 감춘 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보호막 아래에 숨어 있었다. 나름대로 주도면밀한 후계 절차를 밟았어도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국력이 급격히 쇠퇴함으로써 상시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



김정은이 얼마나 출중한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북한 주민들과 외부세계로부터 최고지도자로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그가 후계자 물망에 오른 것으로 처음 알려진 시점은 불과 2년 전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직후다. 이 짧은 시기에 북한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옹립(擁立)하기 위해 외부에는 부인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우상화(偶像化) 작업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 후계자로 ‘책봉’됐음을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를 두고 외부의 관측통들은 “어떤 예상보다 빠르다”고 평가하고 있고, 해외에 주재하는 북한 관리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이 후계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생각보다 크게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26살의 젊은 청년에게 국가의 명운(命運)을 기탁(寄託)해야 하는 북한의 왕조체제는 지금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앞으로 북한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북한 스스로 과감한 개혁을 선택하지 않으면 고사(枯死)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질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후계 세습에 매달리는 북한의 지도부가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가 불투명하다. 이 점은 한반도에 평양발(平壤發) 위기가 조만간 닥칠 수도 있음을 예감(豫感)하게 한다. 한반도의 위기는 동북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적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그 태풍의 한가운데에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각오를 다지고 대비해야 한다. 유사시 상황이 최악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처럼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3자의 자세로 방관(傍觀)하는 대북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상 가능한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준비하는 자에게 위기는 위기가 아닐 수 있다. 나아가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