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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입을 열면 스크린 밖은 뒤집어진다

중앙일보 2010.09.28 00:27 종합 27면 지면보기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작 공모에서 3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영화 ‘방가? 방가!’의 김인권.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나오지 않는 신(scene)이 하나도 없는 명실상부한 첫 주연작이다. [김도훈 인턴기자]
배우 김인권(32)에게 어느 날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다. 1000만 흥행작 ‘해운대’의 ‘컨테이너 피하는 남자’ 동춘 역할로 데뷔 11년 만에 모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난 후였다. 어, 내가 주인공? 그럴 리가. 알고 보니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작이었다. 영진위 지원작이라면 제작비 10억원 남짓의 저예산. 그럼 그렇지, 실망감이 컸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큰 기대감 없던 시나리오가 어느새 “하늘이 내려준 코미디”로 바뀌어 있었다. 의욕이 솟았다. 잘만 하면 짐 캐리·청룽(成龍)·저우싱츠(周星馳), 존경하던 선배님들처럼 인물로 밀고 나가는 캐릭터 코미디가 되겠구나.


저예산 영화 ‘방가? 방가!’서 첫 주연 김인권

이 영화는 그의 첫 주연작 ‘방가? 방가!’(30일 개봉)다. ‘달마야 서울 가자’‘아이언팜’의 육상효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취업백수가 우연히 동남아인으로 오해를 받자 아예 부탄인으로 위장해 의자 공장에 취직한다는 얘기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서너 장면 걸러 한 번씩 웃음이 터질 정도로 웃음 코드가 탄탄하면서도, 우리 안에 숨어있는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곱씹게 만드는 사회파 코미디다.



“사람들 예상보다 방가를 훨씬 더 비굴하고 더 저자세로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정도로요. (입을 오므리며) ‘안녕하세요, 방가입니다’하는 말투도 그래서 나왔죠. 방가를 보고 웃는 한국 사람들에게 ‘당신들, 지금 웃었지? 그게 바로 동남아인들을 무시하는 행동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동남아인을 망가뜨리고 희화화하는 코미디가 아니라 동남아인을 우습게 보는 한국인들을 조롱하는 코미디니까요.”



‘못 튀면 죽는다’는 생존 차원에서, 영화마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인물분석을 해가던 그였지만 이번엔 한 풀 접었다. “방가는 주인공이라기보단 ‘아세아 브라더스’(동남아인 출연자들)를 받쳐주는 감초 역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애드리브(즉흥연기) 하나도 제 맘대로 한 게 없어요. 토씨 하나까지 감독님과 상의했죠. 방가가 ‘한오백년’을 엉터리 부탄말로 부르는 장면에서 ‘숑’자를 어디 넣을지, ‘아브라카다브라’는 어디 넣을지도 감독님과 고민해서 넣은 거에요. 동남아 동료들 모아놓고 욕 강의 할 때 ‘강아지 계열 17번!’하는 것도요.”



최근 그는 트위터(@inkwons)에 “성형을 제외하고 잘 생겨지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글을 올렸다.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그는 성형을 고민한 적이 있다. “외모 탓에 하고 싶은 역할을 못 한다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그걸 깬 계기가 ‘해운대’였어요. 윤제균 감독님이 제가 준비한 의상을 보더니 ‘머리도 스포츠형으로 깎고 트레이닝복 바지에 빨간티 입으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요.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동춘이를 정말 사랑해주셨죠. 사실 제가 송승헌·권상우인 줄 알고 살던 시절이 있었어요. (웃음) ‘숙명’(2008년) 찍을 때였는데, 그때 안 해본 게 없어요. 근육 만들려고 수영하고 헬스하고 밥 굶고. 상우형이 ‘너 이소룡 같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도 김인권은 김인권이더군요.”



그래서 ‘(부탄인 역할에) 싱크로율 100%’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은 ‘방가?방가!’에선 “더 처참하게, 인간 이하로 내려가는 연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나 자신을 덜어내면 덜어낼수록 (관객의) 반응은 더 온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못생기면 더 유리한 작품을 하니 맘이 편해요. 거울 보면서 ‘어, 오늘은 붓기가 너무 빠졌네? 이러면 안 되는데…’ 해요.” ‘성형하지 않고 잘 생겨지는 법’과 관련, 그가 받은 답은 웃고 다니기, 잘 생겼다고 믿어버리기, 미남 포기하고 호남형 되기 등이다. 이중 지금의 김인권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아마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 되기’가 아닐까. ‘방가? 방가!’는 ‘최고’로 달음질치는 여정의 반환점쯤 될 것이고.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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