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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 박사 서거 40주년 … 친손자·손녀 첫 방한

중앙일보 2010.09.28 00:24 종합 22면 지면보기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34번째 민족대표’라 불리는 인물. 일제시대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 국립현충원에 묻힌 유일한 외국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박사.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진 국가유공자다.


“할아버지는 한국을 고향이라 했죠”

27일 강남대에서 스코필드 박사 서거 4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사의 친손자·손녀가 초대됐다. 박사의 후손이 한국에 초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손자 딘 스코필드(58)와 손녀 리사 크로퍼드(50)는 행사 전날인 26일 입국했다.



손자·손녀의 얼굴은 비슷한 나이대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스코필드 박사의 영정과 많이 닮았다. 그들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 인사를 했다. 정운찬 전 총리,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과도 포옹하며 친밀한 인사를 나눴다. 정 전 총리와 김 고문은 학생 때 스코필드 박사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인연이 있다.



손자들이 한국땅을 밟게 된 데는 강남대 문영석(캐나다학) 교수의 역할이 컸다. 그는 캐나다와 한국을 잇는 가장 상징적 인물이 스코필드 박사라고 생각했다. 문 교수는 캐나다 교민사회에 수소문하고 현지 정부에 부탁해 지난해 손자들과 연락이 닿았다.



스코필드 기념사업회와 학자들은 한국에서 박사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여겼다. 스코필드 박사는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지만, 국가 차원의 기념사업은 전무하다. 후손을 초청한 것은 그들에게 감사 표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손자 딘은 “할아버지께서 늘 고향이라 불렀던 한국이 어떤 곳인지 항상 궁금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서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굉장한 일을 했다는 얘길 들려주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일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딘은 “우리에게 한국에서의 할아버지 생활은 신비에 가깝다. 그런 신비를 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딘과 리사는 현충원을 방문하고 할아버지가 남긴 흔적을 며칠간 둘러볼 예정이다.



손자들이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매우 소박했다. 딘은 “할아버지는 항상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느라 가진 게 거의 없었다. 1960년대 후반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는데, 병원에서는 후줄근한 옷을 보고는 노숙자인줄 알았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스물셋의 나이에 선교사 겸 의대 교수로 한국에 왔다. 민족대표 33인 중 이갑성 등과 친했다. 광복 후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다양한 사회사업을 펼쳤다. 70년 서거 뒤 현충원에 묻혔다.



박정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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