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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농민 돈 갈취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최초의 소 보험

중앙일보 2010.09.28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1900년께의 경기도 봉일천 우시장. 농가에서 보험료를 걷던 대조선보험회사가 철폐된 뒤 1898년 새로 설립된 우척(牛隻)보험회사는 우시장에서 소를 사고파는 사람들로부터 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했다. 보험이 뭔지 모르던 당시 사람들은 이를 ‘우세(牛稅)’라고 불렀다. [출처:일제 강점기의 사진 엽서]
 
예전에는 우락부락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람을 흔히 ‘소도둑’ 같다고 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가리키는 대로 도둑 중에서 가장 흉악한 도둑이 소도둑이었다. 보통은 절도범보다 강도범의 죄질을 더 무겁게 치지만 소도둑에 한해서는 예외였다.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도 꼭 죽으란 법은 없었고, 몸에 지닌 물건만 빼앗기면 더 잃을 것도 없었다. 그러나 먹이던 소를 도둑맞으면 대개 식솔을 거느리고 ‘야반도주’를 해야 했다.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나 소 없는 사람이 땅 없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대다수 농민이 부잣집 소를 빌렸다. 물론 소를 먹이고 기르는 비용은 스스로 부담했고, 따로 ‘도지’도 내야 했다. 그러다 소를 잃으면 당연히 소 값을 물어 줘야 했으나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이 굳이 도지를 내면서 남의 소를 빌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 처지에 소를 도둑맞으면 바로 패가망신으로 이어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옛 속담도, ‘우골탑(牛骨塔)’이라는 현대 속어도 소의 가치를 대변한다.

1897년 여름, 대조선보험회사가 농상공부의 인가를 얻어 소 보험 업무를 개시했다. 이 회사는 1892년 상선(商船)에 대한 보험을 구실로 설립됐던 호상보험회사(護商保險會社)에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보험회사이자 보험증권을 남긴 첫 보험회사였다. 보험 조건은 매년 엽전 한 냥씩을 내면 기르던 소가 갑자기 죽거나 소를 도둑맞을 경우 소 값을 물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회사 사원들은 소 키우는 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고 윽박질러 보험료를 강제로 징수했다. 더구나 당시 소 값은 보통 500냥 정도였는데 보험금은 큰 소가 100냥, 중간 소가 70냥, 작은 소는 50냥에 불과했으며 보험금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없다. 보험이 뭔지 모르던 농민들은 없던 ‘우세(牛稅)’가 새로 생겼다고 분개했고, 정부를 향해 원성을 쏟아 냈다. 당황한 정부는 곧 회사 허가를 취소했지만 그 뒤에도 우척보험회사(1898)·무본보험회사(1900) 등이 잇따라 설립돼 비슷한 짓을 되풀이했다.

당시의 소 보험은 보험을 빙자한 토색(討索)에 불과했으나, 그래도 보험다운 점이 하나는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보험은 시대의 불안감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배와 소에서 시작한 우리나라의 보험은 얼마 전부터 ‘몸’과 ‘노후(老後)’에 몰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이 그만큼 ‘자기 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된 결과이고, 또 한편으로는 은퇴 후 바로 시작되는 ‘노후’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깊어진 탓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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