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초대 여자축구대표 감독 박경화씨
◆‘옥경이’ 비아냥 속에 맡은 감독직=20년 전 그의 애창곡은 태진아의 ‘옥경이’였다. 여제자들을 가르친다고 하자 동료 축구인들은 그를 “옥경아”라고 부르며 놀려댔다. 국가대표를 거쳐 명 지도자로 이름을 알리던 그에게 왜 무모한 도전에 나서느냐며 말리는 이도 있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대표로 뽑힌 임은주(전 국제심판)는 필드 하키 선수였고, 이명화는 펜싱을 하던 선수였다. 태릉 육군사관학교 잔디구장에 처음 모인 선수들은 한심했다. 킥은 엉망이었고, 패스의 개념을 이해하는 선수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박 전 감독은 “태클하라고 했더니 파울 아니냐고 따지는 선수도 있었다. 축구 룰도 모르는 선수들을 데리고 석 달 만에 국제대회에 나가려니 잠이 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삼팔선에 봄이 왔다고?”=베테랑 지도자 박 전 감독에게도 여자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은 생소했다. 진해에서 연습경기를 하던 도중 한 선수가 사라졌다. 한참 만에 나타난 선수를 다그치자 돌아온 대답은 “감독님, 삼팔선에 봄이 왔어요”였다.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한 선수가 귀엣말을 해준 뒤에야 ‘삼팔선∼’이 여성의 생리를 이르는 은어라는 걸 알았다.
당시 대표팀 숙소에는 ‘금남(禁男)의 방’ 문패가 붙은 곳이 있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박 전 감독이 방문을 열자 오이 마사지를 하던 선수들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남자들만 지도해 본 그는 선머슴 같은 여자축구 선수들도 예뻐지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기본이 돼야 해. 여민지·지소연을 봐”=박 전 감독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FIFA 코칭스쿨에 다녀왔고 축구 이론서 20여 권을 저술할 만큼 학구파다. 무엇보다 기본기를 중시했다.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 진출이 확정된 후 대표팀 코치였던 그를 찾아와 보름간 개인 지도를 받은 적도 있다.
박 전 감독은 여자 축구가 세계 정상에 오른 비결도 기본에서 찾았다. “여민지와 지소연같이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온 건 초등학교 때부터 기본을 가다듬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일본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우리만의 집중력과 강인함을 쫓아오지 못했다”며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춘 우리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기술을 몸에 익히면 성인 여자월드컵 우승도 먼 일은 아니다”고 낙관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지금도 아차산과 올림픽공원에서 유소년과 장애인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최원창 기자
◆ 박경화는
▶생년월일=1939년 6월 2일
▶학력=배재고-연세대(건국대 편입)
▶ 대표 경력=청소년대표-국가대표(1960년 아시안컵 우승)
▶ 지도자 경력=배재고·동아고·건국대·해군사관학교 감독, 남자대표팀 코치
▶저서=『골을 목표로 하는 공격 축구』 등 20여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