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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지으면서 생각해 봅니다

중앙일보 2010.09.28 00:03 11면 지면보기
이광용 (아산·환경농업운동가)
개구리 한 마리가 헐레벌떡 뛰어와 한 농부의 발 앞에서 멈췄다. 말은 없지만 분명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풀벌레는 개구리가, 개구리는 뱀이 … 순리대로 사는 자연

바로 그때 율매기(뱀) 한 마리가 대가리를 쳐 들고 개구리 있는 쪽을 향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농부는 그가 뭐라 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금방 큰 개구리가 이쪽으로 뛰어왔는데 못 보셨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율매기는 모가지가 빨갛고 몸퉁이 녹색으로 돼 있어 풀밭에서 대가리를 번쩍 들고 있으면 빨간 들꽃같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뱀이다.



개구리는 땅색으로 풀밭에 엎드려 있으면 풀인지 땅인지 분간할 수 없다. 풀벌레가 움직일 때 잽싸게 몸을 날려 풀벌레를 잡아먹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풀속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개구리를 잡아 먹으려고 율매기는 풀밭에 소리없이 해매고 다니다가 농부의 눈에 들킨 것이다. 개구리에겐 가장 무서운 대상이다. 한번 먹잇감이 나타나면 끝까지 추척하여 자신의 먹이로 만든다. 그러나 독이 없어 사람이 물려도 큰 문제는 없다.



개구리가 율매기를 만났을 때는 개구리는 높이뛰기 선수가 된 것마냥 무거운 몸을 날려 위험지역을 벗어난다. 그러나 율매기는 개구리의 행적을 금방 알아차린다. 바로 대가리를 번쩍 쳐들고 개구리가 뛰어가는 방향을 목격한 것이다.



개구리가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쫓아간다. 이렇게 율매기는 개구리와 추격전을 벌리고 있을 때 한 농부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농부가 개구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그 개구리는 자기가 태어난 연못으로 뛰어들어 물속에 몸을 숨기면 안전할 수 있다.



들판에서는 농민들이 겨울이 오기 전 곡식을 수확하느라 바쁘고, 풀밭에선 율매기가 겨울준비를 위해 땅속에 들어가기 전 개구리를 한 마리라도 더 잡아먹으려고 안감힘을 쓴다.



그 두 놈을 사랑하는 농부는 누구편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이 된다. 개구리가 잡혀 먹히면 율매기는 배가 부르고, 안 잡히면 율매기는 배고픈 채 추운 겨울을 땅속에서 보내야 한다.



농부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땅속에 지렁이와 두더지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또 땅위에 개구리와 율매기가 함께 놀 수 있도록 아름다운 야생초가 자라도록 할 수 있다. 그러면 생태계는 평화로운 가운데 생존 경쟁을 한다. 두더지는 지렁이를 잡아먹고 지렁이는 두더지를 피해서 지상으로 나왔다가 두더지가 지나간 다음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개구리는 율매기를 피해 빨리 안전지대로 숨었지만 땅속에 들어가 겨울잠에 빠질 때까지는 늘 불안하다. 주인집 강아지까지 그들을 괴롭힌다. 두더지가 땅을 파면 들썩거리는 땅을 앞발로 파헤치고 두더지를 잡으려고 땅속에 주둥이를 박고 냄새를 맡아 보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구리가 뛰면 쫓아 다니고 율매기가 지나 갈 때면 그의 앞길을 막기도 한다.



주인은 강아지를 부른다. “내버려둬. 자연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두더지가 아무리 지렁이를 잡아먹어도 땅속의 지렁이는 더 번성한다. 율매기가 아무리 개구리를 잡아먹어도 땅위에 개구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개구리가 풀벌레를 잡아 먹어도 풀밭에 풀벌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봄 여름 만이라도 마음껏 꽃을 피워보겠다는 야생초에게도 인정사정없이 제초제를 마구 뿌려 풀 한포기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게 만들었으니 그 땅은 황무지가 돼 어떤 생물도 살아갈 수 없다.



지렁이도 풀벌레도 사라졌고 두더지도 먹을 것을 잃었으니 살아 갈 수 없다. 대가리를 번쩍 쳐들고 다니던 율매기도 개구리도 그곳을 떠났다. 공중에 나는 새도 그곳에 오지 않았다.



산천초목을 깨끗하고 소중히 가꿀때 동식물은 인간 곁을 떠나지 않는다. 농부도 외롭지 않고 풍요로운 가을을 맛볼 수 있다. 어차피 그들은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먼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지렁이 한 마리 풀 한 포기라도 사랑할 때 자연은 우리에게 풀벌레 소리를 들려주고, 산새가 노래 부르고 야생화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동식물을 소중히 여길 때 자연은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으며 그때 창조주는 우리를 더 사랑 하시는 것은 아닌지.



이광용 (아산·환경농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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