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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다툼 중이라도 ‘동업자 미덕’은 지킨다

중앙선데이 2010.09.18 23:54 184호 22면 지면보기
전 골드먼삭스 CEO 존 코자인
사내정치(Office Politics)는 기업 내 권력투쟁을 의미한다. 미국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에서는 잦은 일이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2008년 중앙SUNDAY에 쓴 칼럼에서 “사내정치는 지분 분산이 잘 돼 있어 설립자 또는 오너의 자취가 뚜렷하지 않는 대형 금융회사의 일상사”라고 말했다. 좋든 싫든 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금융회사 내부자들은 연봉과 승진을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한다. 가장 치열한 일합(一合)은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놓고 벌이는 쟁탈전이다.

선진 금융회사의 명품 리더십 ② 막장 드라마를 막아주는 파트너십


승자의 지위가 늘 반석 같지는 않다. 그가 빈틈을 보이면 쿠데타에 의해 쫓겨나기도 한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존 코자인(63·전 뉴저지 주지사)은 1999년 1월 대표 자리에서 축출됐다. 당시 넘버 2인 헨리 폴슨(64·전 재무장관)이 존 손튼(56·브루킹스연구소 이사장), 존 테인(55·전 메릴린치 CEO)과 함께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서였다.

폴슨, 쿠데타로 CEO 자리 차지
쿠데타의 명분은 코자인의 독단과 독선이었다. 쿠데타 한 해 전인 98년 롱텀캐피털 사태가 발생하자 코자인은 월가 자체 구제작전을 주관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시장 파국은 피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거액의 회사 자금을 선뜻 구제금융으로 내놓았다. 이런 통 큰 행보가 화근이었다. 대표인 코자인이 거액의 회사 돈을 쓰기 위해서는 골드먼삭스의 당시 경영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했다. 코자인은 상황이 다급하다는 이유로 그 절차를 무시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폴슨이 그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경영위원회를 소집해 런던에 출장 가 있는 코자인을 해임해 버렸다.

월가 대형 금융회사 CEO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실적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사내정치 테크닉을 부린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 대표적인 기법이다. 쿠데타로 CEO 자리에 오른 폴슨은 동맹자인 손튼과 테인을 늘 경계했다. 의도적으로 그는 ‘굴러온 돌’ 로이드 블랭크페인(56)을 키웠다. 블랭크페인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골드먼삭스 입사 시험에서 탈락했다. 대신 상품투자회사인 J-애런에 취직했다. 그런데 80년대 초 골드먼삭스가 J-애런을 인수합병(M&A)하면서 블랭크페인은 골드먼삭스 일원이 됐다.

블랭크페인은 한때 퇴출 1순위였지만 충성심과 저돌적인 업무추진, 유머감각 덕분에 생존해 폴슨의 총애를 받았다. 2인자 자리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 폴슨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장관에 임명된 2006년 블랭크페인은 정난공신(靖亂功臣)인 테인과 손튼을 제치고 골드먼삭스 수장 자리에 올랐다. 그가 이끈 상품 트레이딩 부문의 좋은 실적과 함께 폴슨의 이이제이가 한몫했다고 월가 전문가들은 말했다.

워버그는 내분으로 끝내 붕괴
사내정치 때문에 산산이 쪼개진 금융그룹도 있다. 영국의 전설적인 투자은행 SG워버그는 사내갈등을 삭이지 못했다. 끝내 스위스 거대 금융그룹 UBS와 미국 JP모건 등에 분산·흡수돼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워버그는 독일계 유대인인 지그문트 워버그가 1946년에 세운 투자은행이었다. 앵글로색슨계가 터줏대감 노릇하고 있던 런던 금융중심지 더시티(The City)에서 공격적인 비즈니스로 성공을 거둬 메이저 투자은행이 됐다. 프랑스계인 파리바와 손잡고 미국 증권사를 인수하는 등 자본규제가 심한 70년대 글로벌화를 앞서 추구했다. 워버그는 신출내기 금융자본이 어떻게 기존 판을 깨고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설립자 지그문트가 82년 10월 숨을 거두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자 영국계·미국계·독일계·스위스계 임원들이 치열하게 권력다툼을 벌였다. 인종과 문화적 갈등까지 곁들여져 타협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회사를 쪼개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 사바나’에서 분열은 곧 죽음이기 십상이다. SG워버그는 스위스 UBS와 미국 JP모건의 공격을 받았다. JP모건은 워버그의 미국 법인을 해치웠다. 본사 격인 영국의 SG워버그는 95년 UBS에 흡수됐다. 그해 5월 뉴욕 타임스는 “20세기 금융혁신을 이끈 워버그가 사내정치 때문에 끝내 파편화됐다”고 보도했다.

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도 90년대 중반 혹독한 사내 갈등을 겪었다. 투자은행 내부의 고질병인 투자은행가들과 트레이더의 싸움 탓이다. 투자은행가들은 증권인수와 M&A 등을 담당한다. 그들은 기업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증권인수 계약 등을 따낸다. 회사 내부에선 ‘귀족’으로 불린다. 반면 트레이더들은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우주항공 통제실과 비슷한 트레이딩룸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며 글로벌 시장에서 난타전을 벌인다. 육두문자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90년대 이후 투자은행에서 최고 수익을 창출했다. 하지만 회사 내에선 ‘천한 것들’로 통했다. CEO 승진 등에서도 투자은행가들에게 곧잘 밀려 불만이 가득했다.

리먼의 투자은행가와 트레이더들은 끝내 94년 갈라섰다. 트레이딩 부문은 증권회사인 프리메리카에 흡수됐다. 남은 투자은행 부문만 리먼브러더스의 이름을 유지하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2008년 9월 15일 ‘독재자’ 리처드 풀드의 고집 때문에 파산했다.

국내엔 갈등 완충제가 부족
골드먼삭스는 갈등을 딛고 세계 최대 투자은행으로 성장한 반면 SG워버그는 공중 분해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미경제연구소(NBER) 이사인 랜덜 모크는 기업지배구조 논문과 보고서에서 “파트너십(Partnership) 전통이 사내정치의 중요한 완충제”라고 주장했다. 유한책임제를 뼈대로 한 주식회사와는 달리 파트너십은 기본적으로 무한책임제다. 파트너들은 회사 채무 등에 대해 지분 한도를 넘어서까지 책임져야 한다. 파트너 한 사람의 과실 때문에 모두가 파산할 수 있는 구조였다. ‘공멸의 두려움’이 상존했다. JP모건과 골드먼삭스 등은 오랜 세월 파트너십 체제였다. 골드먼삭스는 다른 투자은행보다 더 오래 파트너십 체제를 유지하다 99년에야 상장했다.

파트너십은 “이윤 추구라는 이기적인 동기를 바탕으로 한 운명 공동체”라고 모크는 말했다. 이런 공동체 정신이 자리 잡은 회사에서는 권력다툼이 발생하더라도 고성이 담장 너머까지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99년 골드먼삭스 쿠데타의 파열음이 내부에선 컸지만 밖에선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코자인이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발표됐다. 동업자에 대한 배려심이 발휘된 것이다.

오랜 파트너십이 낳은 운명 공동체 문화는 골드먼삭스 등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주식회사 체제로 바뀐 뒤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등 신흥국의 금융회사들은 파트너십 체제를 거의 경험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주식회사 체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운명 공동체 정신이 싹틀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내분의 파열음이 담장 너머까지 울려퍼지기 십상일 뿐만 아니라 법정 다툼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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