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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역량 키워야 금융회사 미래 있다

중앙선데이 2010.09.18 23:47 184호 24면 지면보기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미국의 초대 재무부 장관이다.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의 부관으로 활약하였고, 장관이 된 이후 상공업 발달을 중시한 재무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미국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특히 지금의 연방준비은행과 유사한 국립은행(national bank)을 설립했는데, 이는 그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던 제퍼슨 진영조차 인정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런데 빛나는 커리어만큼이나 그의 마지막은 드라마틱했다. 해밀턴은 오랜 정적인 부통령 출신의 애런 버(Aaron Burr)와 결투(duel)를 하고 치명상을 입게 된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결투를 치르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바로 이 해밀턴이 1784년 뉴욕은행을 만들었다. 재미난 사실은 국립은행이 탄생될 때까지 뉴욕은행이 은행 간 거래를 중개해 왔다는 점이다.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뉴욕은행은 지급결제 부문의 독보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2007년 멜론과 합병함으로써 자산운용시장의 강자로 떠올랐지만, 지금도 다른 은행들이 귀찮아하는 증권 및 사무수탁 등 프로세싱 업무를 주로 한다.

뉴욕은행은 새로운 시장을 곁눈질하기보다 강점을 더욱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6년 8월 단행된 JP모건체이스와의 딜이 대표적인 예다. 뉴욕은행은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소재의 338개 지점을 매각함으로써 70만 소매고객과 2000여 개의 중소기업고객을 포기했다. 대신 기업신탁 사업을 확충함으로써 이들 신규고객에게 교차상품을 팔 기회를 포착했다. 상업은행이 지점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 기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뉴욕은행은 핵심 역량 이외의 카드는 언제든지 던질 수 있음을 시장에 알렸다.

금융회사의 ‘납득할 수 없는 변신’은 무죄가 아니다. 최근 국내 금융회사들의 국제화 과정을 보라. 경영진의 오판은 일반 기업과 차원이 다른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금융산업은 내수산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어디를 둘러봐도 토종이 힘을 발휘하는 영역이 거의 없다. 주식시장은 외국인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하나 여전히 이들의 놀이터다. 지금처럼 경기선행지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도 ‘돌아온 외국인’ 덕분 아니겠는가. 채권시장이나 외환시장에서 외국인의 존재감은 무게를 더한다. 최근에는 중국인까지 가세해 판을 흔들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멀쩡한 중소기업을 파국으로 치닫게 했던 키코(KIKO)의 악몽은 외국계 투자은행의 작품이다. 은행 정도가 대출시장에서 체면을 유지하고 있지만, 외국인 지분이 50%를 상회한다. 게다가 간판을 외국계로 갈아치운 은행이 여럿 있으니 토종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금융정책당국의 도움으로 근근이 면피하는 상황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다고 바뀌는 것이 있겠는가. ‘세계로’의 깃발이 악몽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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