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빙하가 빚은 호수·습지 변화무쌍한 생태계 지구 역사 고스란히 담겨

중앙선데이 2010.09.18 23:36 184호 8면 지면보기
1 태즈메이니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크래들 산-세인트클레어 호수 국립공원의 초가을 풍경.
본토와 너무 다른 풍광
호바트공항에서 대여한 렌터카 산타페는 핸들이 우측에 붙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익숙한 덕분에 편안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차창 너머로 펼쳐진 태즈메이니아 섬의 풍광은 본토와 확연히 달랐다. 척박한 사바나 지역도, 울창한 열대우림도 보이지 않았다. 지상의 풍경은 하나같이 정겹다. 대지를 가슴에 안고 달리기를 두 시간 남짓. 멀리 지평선 위에서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풍광이 다가오고 있었다. 즈메이니아 원생지역은 태즈메이니아 섬의 중앙 내륙과 남서쪽에 해당된다. 크래들 산-세인트클레어 호수 국립공원,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 프랭클린-고든 국립공원, 마운트 필드 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태즈메이니아 원생지역은 총 22곳에 달하는 보호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약 1만4000㎢에 달하는 면적은 호주 복합유산 가운데 최대 규모다. 1982년 등재됐고 89년 현재지역으로 확대 지정됐다.

사진작가 이형준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복합유산을 찾아서<6>호주 태즈메이니아 원생지역


2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지역에 서식하는 고산식물에서는 곤드와나 대륙 시대의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 3 태즈메이니아 고유의 수목성 양치식물과 원시 곤드와나 대륙의 식물이 모여 있는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
이곳의 지형과 풍광은 빙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1300m가 넘는 산이 20곳에 달한다. 산을 중심으로 구릉과 산지, 험준한 비탈과 고원들판, U자형 골짜기와 협곡, 호수와 습지는 대부분 빙하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빙하가 만들어낸 원생지역은 지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바다에 가까운 지역에는 아열대성 식물, 낮은 산록과 구릉지역에 조성된 온대림, 산간 내륙에 남아 있는 아한대성과 고산 지역의 아고산대 식물대까지. 이토록 다양한 분포대를 갖추고 있는 세계유산은 태즈메이니아 원생지역이 유일하다.

원생지역의 상징 세인트클레어 호수 국립공원
목가적인 풍경과 정겨운 마을, 세 곳의 광활한 국립공원을 통과하고서야 크래들산-세인트클레어 호수 국립공원과 마주할 수 있었다. 꼬박 6시간을 달려온 끝에 대면한 이곳은 한창 여름인 호바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가을을 재촉하는 안개비가 내리는 국립공원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로지에서 호수까지는 트레킹과 자동차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곤드와나 대륙 시대를 상징하는 양치식물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실컷 보았기에 이제 지루할 정도였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캥거루 사촌 왈라비 10여 마리가 그나마 흥분과 기대감을 충족시켰다. 안내책자에 따르면 바늘두더지와 야행성인 태즈메이니아 데빌도 출몰한다고 되어있지만 단 한 마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자동차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지점에 세인트클레어 호수가 있었다. 화산이 폭발한 분화구에 조성된 호수다. 167m에 달하는 수심은 호주 호수 가운데 가장 깊다. 호수 뒤편으로는 태즈메이니아 원생지역을 상징하는 크래들 산이 있다. 해발 1545m인 크래들 산은 현무암층 바위산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고 침식작용에 쓸린 현무암층은 태즈메이니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크래들 산 바로 아래에는 도베 호수가 있다. 아담한 도베 호수는 늘 안개로 감싸여 있다. 호수에서 피어 오른 안개는 크래들 산 봉우리를 반쯤 덮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묘한 신비감을 제공한다.

4 수목이 무성했던 곳을 벌목해 만든 농장에서 풀을 먹고 있는 양떼들. 5 멈춰선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는 왈라비. 태즈메이니아 섬에는 캥거루가 없다. 6,7 저지대와 해안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꽃과 펠리컨. 8 토착민들이 사용했던 동물 뼈로 만든 생활도구. 태즈메이니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유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내륙 산간
태즈메이니아는 아한대성 기후대에 속해 있었다. 오랜 세월 태초의 모습으로 보존되던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 것은 서구 문명을 앞세워 섬에 들어온 영국인에 의해서였다. 1820년부터 시작된 벌목사업은 150년 동안 계속되었다. 대규모 벌목사업은 태즈메이니아 생태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대대적인 벌목사업에도 불구하고 산간 내륙지역에는 태즈메이니아의 고유한 생태계가 남아 있다. 고유한 아한대성 생태계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접근이 불편한 산간 내륙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래들 산-세인트클레어 호수 국립공원과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에 걸쳐 있는 산간 내륙지역은 태즈메이니아 원생지역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역이다.

해발 500~1000m 사이에 해당하는 산간 내륙지역에는 아한대성 양치식물과 수목성 식물을 비롯해 곤드와나 대륙 시대의 식물인 태즈메이니아 삼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산간 저지대에는 양서류와 이끼류를 비롯해 키가 1~2m에 달하는 고사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산간내륙 고산 지역에는 아고산대 식물과 키 작은 너도밤나무를 볼 수 있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전문안내자 없이는 내륙 깊숙이 접근이 불가능한 점이다.

독특하고 신비로운 호수와 습지
태즈메이니아 원생지역 중앙에는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과 프랭클린-고든 국립공원이 있다. 두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1만500㎢로 복합유산지역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넓다. 고산지대부터 산간내륙, 호수와 습지, 그리고 해안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한 두 국립공원에서 인상적인 곳은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습지다. 사우스웨스트 국립공원에는 태즈메이니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멜라루카 호수와 두 번째로 큰 페더 호수가 있다. 고산 지역에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강수량이 있기에 가능했다. 두 공원에 내리는 연평균 강수량은 3500㎜가 넘는다. 풍부한 강수량은 식물과 나무를 자라게 만들고, 그 나무와 식물은 다시 깨끗한 환경을 조성해 각종 조류와 동물을 끌어들이고 있다.

두 호수에는 특이한 풍경이 많다. 그중 유독 시선을 잡는 것이 호수에 뿌리를 내린 나무다. 물 속에 뿌리를 둘러보기 위해 세 차례나 보트에 올랐지만 호수가 너무 넓어 극히 일부밖에 볼 수 없었다. 호수에 뿌리 내린 수종 가운데 유독 많은 것이 늘씬한 자태를 간직한 유칼립투스다. 한편 호수 지역에 조성된 늪지대 주변에는 강도가 매우 뛰어난 휴온 소나무와 잎이 노란 황금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풍부한 수량과 다양한 수종이 숲을 이룬 호수에서는 어느 때나 백조와 작은 물새를 볼 수 있다.

바위·동굴 벽엔 토착민의 자취가
오랫동안 태즈메이니아의 주인은 애보리진으로 불리는 토착민이었다. 영국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초 태즈메이니아에는 4500명이 넘는 토착민이 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대로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온 토착민들은 보호라는 미명 아래 플란더스 섬에 모두 수용되었다. 1830년부터 수용된 토착민들은 1876년 마지막 토착민인 트루가니니가 사망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그녀의 죽음은 수천 년을 이어온 토착민의 삶과 문화를 역사 속에 영원히 묻히게 되었다.

긴 세월 섬의 주인으로 살았던 애보리진 토착민들은 여러 곳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그들은 돌로 만든 무기류와 석기를 사용했으며 동물 뼈로 생활용품과 장식품을 착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바위와 동굴 벽에 그림도 남겼다. 학자들은 태즈메이니아에서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를 최소 3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토착민의 생활공간은 저즈 동굴과 카나번조지 동굴을 비롯해 작은 마을까지 100여 곳이 넘는다.
하지만 벽화가 그려진 동굴은 보호를 위해 두 곳을 제외하고 모두 폐쇄되어 있다. 따라서 여러 곳에서 발굴된 유물을 감상하려면 호바트 태즈메이니아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 다음 호에는 2010년 자연유산에서 복합유산으로 확장 등재된 탄자니아 응고롱고로 보호구역을 찾아갑니다.




여행 메모:가는 길
태즈메이니아로 가기 위해서는 인천 → 시드니 → 호바트 행 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인천에서 시드니까지 10시간, 시드니에서 호바트까지 2시간이 소요된다. 원생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렌터카가 필수다.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트레킹과 야영할 경우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출입자 기록지에 이름, 비상연락처, 목적지를 남겨야 한다. 기온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보온의류를 준비해야 한다. 호주는 3개월 동안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하다.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 동안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