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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없이 지식정보사회 못 만든다

중앙선데이 2010.09.18 23:29 184호 31면 지면보기
이명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공정사회’라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아직 차가운 편이다. 왜냐하면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위장전입, 병역면제, 편법, 탈법을 일삼는데 이게 무슨 공정사회냐고 하는 냉소적 분위기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떤 배경에서 ‘공정사회’를 내세웠으며 국민 다수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지금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사회적 패러다임이 지식정보사회적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는 엄청난 시대적 변화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성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는 것을 납득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공정한 사회는 우리의 성장동력과 직결되는 주제다.
산업사회는 수직적 분업사회였고, 정보사회는 수평적 네트워크 분업사회다. 또한 산업사회는 유형자산사회인 반면 정보사회는 무형지식사회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산업사회적 관계를 형성했던 주종(主從) 심리, 유형자산 중시 심리가 정보사회인 지금에도 지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 폐해가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스스로를 ‘4D’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조한다. 종래의 3D에 ‘꿈 없는(Dreamless) 직업’이라는 한계적 상황이 더해진 것이다. 지식정보사회를 이끄는 주된 동력은 창조기업에서 나오지만 창조적인 중소 벤처들은 아직도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일방적인 갑을 관계의 피해를 받고 있다.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 창조적 가치 대신에 투입된 노동시간으로 값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창의’가 갖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세계적 기업 또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소프트파워 강국인 미국의 세계적 지위 또한 확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째, 공정한 노사관계만이 경제발전과 취업 증가를 이룰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전의 노사는 사용자와 정부가 압도적 힘을 행사한 불공정한 관계였다. 87~89년 노사대분규 과정을 거치면서 힘의 중심은 노동조합 쪽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노사관계의 이중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경영진을 선출하거나 작업현장 지휘권을 갖고 있는 일부 대기업의 경우가 한 편에서 존재한다. 또 다른 편에서는 기획사에 체불임금의 지불을 요구했다가 쇠파이프로 폭행당한 어느 뮤지컬 배우처럼, 원시적 노사관계에 시달리는 경우가 공존한다. 양쪽의 어느 경우도 힘의 관계일 뿐 공정한 노사관계는 아니다. 힘의 관계에 서 있는 사업장의 미래는 없다. 우리나라가 적극 개발해야 할 콘텐트 산업을 비롯한 소프트파워 산업의 미래도 없다. 공정한 노사관계가 성립돼야 노사 양쪽은 기업 발전과 노동복지를 최대화할 수 있는 최적점을 추구할 수 있다.

셋째, 공정사회가 되어야 고(高)신뢰 사회가 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결과가 여론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음모론이 확산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로 인한 국론 분열과 사회적 낭비를 생각하면 이 사태는 ‘천암함 폭침’ 자체보다 더 큰 손실을 우리 사회에 끼쳤을 수 있다. 순수한 학문적 입장에서 네트워크 이론으로 이 사태를 분석하면 매우 의미심장한 결과가 도출된다. 일정 수준의 전문성과 정보능력을 갖춘 집단들이 만들어낸 그럴듯한 ‘설’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고도의 전문성과 객관적 자료를 갖춘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터넷 세상에서 압도해버린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정부와 사회 지도층에 있다. 이들이 공정성이라는 자산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 발표에 대해 그 과학적 진실이 어떠하든 간에 사회에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시대에는 고신뢰 사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고신뢰 사회가 되려면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의 윤리적 연대의식이 확립돼야 한다. 정부는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우리 사회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은 공정성의 주체를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공정사회의 기본 인프라는 투명성의 확보다. 투명한 고신뢰 사회에서 새로운 시도와 모험이 무한히 펼쳐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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